문화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 같아 끊임없이 순환하고 변화해야만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종종 스스로의 문화를 충분히 가치 있게 여기지 못하고 외부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러한 ‘문화 역수입’ 현상은 문화 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임시방편적인 인정 욕구 해소에 머무를 위험성을 내포한다.
본 발표의 배경에는 한국 문화가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고 나서야 국내에서 뒤늦게 그 가치를 재평가받는다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한류’라는 용어 자체가 중화권 언론에 의해 처음 명명되었듯, 한국 문화의 성공은 종종 외부의 시선과 평가를 통해 비로소 국내에서 의미화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왔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국내에서도 ‘우리가 간직하고 있던 감정의 DNA’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된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남아, 중남미 등에서 보여준 ‘K-신파’적 감수성과 가족주의에 대한 공명은 이러한 문화적 특성이 외부에서 먼저 발견되고 인정받을 때 비로소 자국 내에서 주목받는 현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인정 욕구, 즉 ‘외부로부터의 평가를 통해 가치를 확인하려는 심리’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는 문화적 자기 확인 방식의 하나로 볼 수 있으며, 자국 문화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외부의 찬사를 통해 그 가치를 재확인하려는 글로벌 시대의 보편적인 문화 심리학적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때로는 자국 문화에 대한 집단적 콤플렉스나 자신감 부족에서 비롯된 ‘자학 사관’의 산물이기도 하다. ‘우리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외부 자극을 통해서야 비로소 가치를 깨닫는 이러한 패턴은 ‘두유 노우 000?’ 시리즈와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내부 자산을 외부의 거울로 비추어 재해석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탱고나 일본의 우키요에 사례는 문화 역수입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르헨티나 부두 노동자들의 춤으로 시작된 탱고가 유럽 상류층의 재발견을 통해 예술로 승화되었고, 일본의 대중적인 인쇄물이었던 우키요에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영감을 주면서 일본 내에서도 재평가받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본국에서 외면받거나 저평가되었던 문화가 해외에서 빛을 발하며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경우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은 문화가 ‘순환’하고 ‘회귀’하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재구성해야 함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문화는 외연의 확장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순환과 회귀,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체성의 재구성이 중요하다. 문화 역수입은 이러한 순환의 한 국면일 뿐이며, 진정한 문화적 자생력은 외부의 인정에 앞서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내실 있게 발전시키는 데서 비롯된다. 문화는 순환할 때 비로소 살아있지만, 그 순환을 건강하게 맞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킬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외부의 평가를 기다리기보다, 자신이 가진 가치를 미리 알아보고 내 집에서 제대로 키우는 것, 그것이 문화 역수입의 맹점을 넘어 문화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