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맞이하며 외교안보 분야에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의 한미동맹 격상과 ‘한미일 안보협력’ 확대를 위한 기반 마련이라는 중요한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고조되는 국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라는 난제 앞에 정부의 향후 외교안보 정책 방향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요구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년 반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후티 반군의 홍해 민간상선 공격,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 고조 등 세계는 지정학적 혼란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어려운 정세 속에서 윤석열 정부는 ‘세계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추진’이라는 비전 아래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 왔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임기 반환점을 맞아 개최한 언론간담회에서 지난 10개월간 120여 회의 외교장관 접촉을 통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 제고와 국제사회의 높은 기대를 방증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핵·북한 인권 문제, 주변 4국과의 외교 관계, 경제 안보 및 민생 외교, 글로벌 중추국가 다자외교, 인도·태평양 전략 및 지역 협력, 재외국민 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과를 설명했다. 또한 통일부 역시 ‘원칙 있는 대북정책’, ‘북한인권 증진 노력’, ‘통일역량 강화’라는 정책 방향 아래 성과를 만들어왔다고 평가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외교안보 분야의 성과는 한미동맹을 ‘명실상부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재확인한 것이다. 2023년 4월 개최된 ‘한미동맹 70주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정의로운 한미동맹’이라는 비전 아래 자유, 법치,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동맹’으로서의 지향점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한미동맹은 ‘가치동맹’이라는 주춧돌 위에 ‘안보동맹’, ‘경제동맹’, ‘기술동맹’, ‘문화동맹’, ‘정보동맹’의 다섯 개 기둥을 확고히 자리 잡았다. 특히 ‘워싱턴 선언’ 발표를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 NCG)을 신설함으로써 ‘한국형 확장억제’를 구체화하고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질적으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 NCG는 핵 운용 관련 사안에 집중하여 심도 있는 협의를 진행하며 북한 핵 대응 의사결정 과정에서 우리의 관여를 크게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정례적 전개와 전략핵잠수함(SSBN) 기항 예고는 확장억제의 가시성을 증진하는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정상회담에서는 사이버 안보 협력 강화를 위한 ‘한미 전략적 사이버안보 협력 프레임워크’와 기술·경제안보 협력을 위한 ‘한미 차세대 핵심 신흥 기술 대화 공동성명’도 발표되며 7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이 진정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중요한 성과는 2023년 8월 18일 캠프데이비드에서 개최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안보협력 확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3국 정상은 ‘캠프데이비드 정신’과 ‘캠프데이비드 원칙’을 통해 3국 협력의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인도-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에 걸쳐 3국 협력을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특히 ‘3국협의 강화 공약’은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위협에 대한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3자 차원에서 신속하게 협의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지침을 담고 있다. 과거 ‘약한 고리’로 평가받았던 한일 관계를 극복하고 별도의 정상회의를 개최한 것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전반기 외교안보에서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은 남북 관계의 경색과 단절이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간 남북 관계는 윤 정부 들어 더욱 악화되었다. 북한은 ‘담대한 구상’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남 ‘대적 투쟁’ 기조를 이어갔으며,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 발사를 감행했다. 이에 정부는 9·19 군사합의 효력 일부 정지로 대응했으나, 북한은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하며 책임을 전가했다. 더욱이 북한은 지난해 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며 한반도 우발사태 및 군사 충돌 가능성을 증대시켰다. 국제적으로도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은 동북아 냉전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으며, 향후 확전 위험과 유럽 및 한반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조성할 수 있다. 푸틴의 평양 방문 당시 체결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은 사실상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복원시킨 것으로 해석되며, 이는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민감 군사기술 제공 가능성과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의 개입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윤석열 정부 후반기의 외교안보 환경 역시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내년 1월 취임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한국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 북미 직접 대화를 통한 핵 타협 가능성, FTA 추가 재협상 및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로 인한 경제안보 협력 차질, 그리고 대중국 압박 동참 요구 강화 등 세 가지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파편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새로운 진영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며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증대하는 글로벌 지정학적 상황은 한국에 유례없는 위기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한국은 국제정세가 불안정하고 리스크가 클수록 한미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닥쳐올 리스크를 분산하고 방지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미국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자유, 평화, 번영의 국가안보 전략 추구를 통해 미국과의 가치 외교 공통분모를 확대해야 한다. 더불어 유사입장 국가들과의 네트워킹 확대와 중견국 연대력을 잘 활용하고, 국제정세가 불확실할수록 균형과 탄력성에 기반한 유연한 전략적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 후반기 외교안보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