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 100일을 맞았다. 대한민국은 역대 최악이라 불릴 만한 대내외적 어려움 속에서 정부를 시작해야 했다. 불법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압도적 승리를 예상했으나, 실제 득표율은 1~2위 후보 간 격차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이로써 이재명 정부는 과반 득표에 실패하며 보수 진영의 상당한 표심을 확인한 채 출범했다.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이재명 정부가 국민 통합적 국정 운영을 강제하는 측면으로 작용했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으로 내수 경제는 침체되어 0%대 경제성장률이 예고되었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통상 환경 악화, 껄끄러운 주변국과의 외교 복원 난제, 내란 극복을 위한 특검 수사 등 긴장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환경이었다. 이러한 복잡한 위기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위기 극복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중차대한 역할이 주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정의를 위한 통합 정부, 유연한 실용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진영을 망라한 국민 지지를 얻어야 국정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음을 인지했다. 중도를 만족시키고 보수 진영을 포용하며 정권 교체로 인한 효능감을 국민에게 주는 것이 절실했다.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발언은 정치적 수사로 의심받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 통합 노력과 실용주의 노선은 진심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사에서도 이러한 실용주의 기조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시키는 등 보수 진영 인사라도 능력만 있다면 적극 기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시민이 직접 공직자를 추천하는 국민추천제를 실시하여 약 7만 4000여 건의 추천을 접수했고, 일부 공직자는 추천 후보군에서 발탁하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수위원회 없이 출발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여당 의원들을 장관직에 다수 기용한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으나, 설명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었다. 또한 특정 지역이나 대학에 편중되지 않고 민간에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인사를 주요 공직에 깜짝 기용하는 파격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 대표 시절부터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빠른 취임 한 달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 방향을 직접 설명했다. 일부 국무회의 전체 과정을 언론에 공개하여 국무위원들의 논의 과정과 대책 마련 과정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렸으며, 격의 없고 실용적인 회의 방식 또한 호평을 받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정책 아이디어 수렴 방식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행적으로 비공개되던 대통령실 출입 기자단과 대변인의 질의응답 과정을 모두 공개하여 투명성을 제고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대통령이 직접 문제 해결사로 나선 행보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6월 광주광역시에서는 시민과의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지역의 오랜 숙원이던 광주 군공항 이전 갈등을 중재하며 문제 해결의 물꼬를 텄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SPC 공장에 직접 방문하여 회의를 주재하고 경영진으로부터 해결책을 들었으며, 반복되는 산업재해 관련 국무회의에서는 건설면허 취소 등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외국인 노동자 학대 사건 언급, 이태원 참사 유가족 면담, 산림청 책임 문제 지적 등 국민들이 새 정부에 대한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현장을 누볐다. 다만 시스템이 아닌 대통령 개인기에 의존하는 ‘만기친람’ 리더십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이재명 정부의 노력은 긍정적인 여론 조사 결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의 6월 넷째 주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64%를 기록했으며, 9월 첫째 주 조사에서도 63%의 긍정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진보 진영뿐만 아니라 넓은 중도층과 일부 보수층에서도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난 100일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재명 정부 역시 초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오광수 민정수석의 재산 증식 의혹 사퇴,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와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의 논문 표절 및 ‘보좌관 갑질’ 논란으로 인한 지명 철회 및 자진 사퇴는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야기했다. 또한 과거 당 대표 시절 변호를 맡았던 법조인들의 대거 중용은 보은 인사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지율 측면에서 가장 큰 위기는 8·15 특별사면 시기였다. 이 시기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가 하락했으며, 조국 전 대표나 윤미향 전 의원 사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해졌다. 여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뇌물 혐의로 실형을 받은 야당 부패 정치인까지 사면한 것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평가가 지지율 반등의 계기가 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100일은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호평을 받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과제는 지난 100일이 아닌 앞으로의 5년이다. 지금은 국민들이 새 정부에 우호적인 시선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약 1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비판의 목소리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권 때보다 경제 지표가 호전되고 있지만, 서민들이 체감할 만큼 경기가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높은 실업률, 1% 안팎의 경제성장률 예상, 대기업 해외 공장 이전으로 인한 고용 지표의 구조적 한계는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운 과제다.
대통령은 협치를 이야기하지만, 여당이 야당을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는 강경 기조는 결국 정권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악수 후 다음날 국회 연설에서 설전을 주고받는 장면은 이러한 단면을 보여준다. 야당에 대한 특검 수사의 장기화 피로감과 보수 진영의 반발 역시 국민 통합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미국 이민 당국의 한국인 무더기 체포로 인한 한미 관계 긴장, 미국의 지속적인 통상 압력, 방위비 분담금 및 국방비 증액 압박도 난제다.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과의 우호적 관계 구축 역시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분명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대통령은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대 진영을 설득하며 대화에 참여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새 정부의 노력에 많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 이후 ‘증명하지 못했다’는 평가처럼, 정부는 본인의 유능함을 결과로 입증해야 한다. 대통령 혼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기에, 결국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정부 조직 개편안 통과가 예정된 만큼, 이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장관들이 앞장서야 할 때다. 정부의 선의에 대한 호평은 100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