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저출생·고령화, 디지털 전환, 글로벌 공급망 블록화 등 구조적 요인과 중국 경기 둔화, 미국발 관세 전쟁 등 복합적인 외부 충격으로 인해 심각한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2025년 1분기 0.2% 역성장을 기록했으며, 잠재성장률 역시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30년 이후에는 1% 초중반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특히 ‘고용 없는 성장’과 소득·자산 양극화, 내수 부진은 2024년 폐업자 수가 역대 최초로 100만 명을 돌파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2026년 유럽 중심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은 에너지 다소비형 제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경제 현실은 경제정책의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필요한 정책이 적기에 시행되지 않으면,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훨씬 더 큰 노력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추락하는 성장 동력을 살리고 민생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역할이 절실했다. 그러나 최근 3년간(2022~2024년) 정부는 재정을 소극적으로 운용하며 작동하지 않는 낙수효과에 기댄 감세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했으며, 저성장 국면 지속에도 불구하고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하여 경제 안정과 성장, 재정 건전성 개선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오히려 감세와 긴축 재정은 정부 부문의 경제 성장 기여도를 축소시켰고, 조세 및 공적 이전 소득을 통한 재분배 효과마저 약화시켰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유럽 국가들이 겪었던 ‘자멸적 긴축 재정’의 전철을 밟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경제적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2026년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했다. 2026년 예산안은 한국 경제의 성장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과 외부 충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소하려는 ‘혁신과 포용’의 확장적 재정 기조를 특징으로 한다. 본예산 기준 총지출은 전년 대비 8.1% 증가한 반면, 총수입은 3.5% 증가에 그쳐 GDP 대비 4.0%의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는 GDP 대비 51.6%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향후 총지출 증가율을 명목성장률 수준으로 축소하고, 2029년까지 국가채무를 50% 후반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증액된 예산은 초혁신 경제 구축에 72조 원, 포용적 사회를 위한 사업에 175조 원, 국민 안전 및 국익 중심 외교·안보에 30조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재정 운용 기조의 확장적 전환에 따라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은 세계적 수준의 가계부채를 야기한 과거의 소극적 재정 운용이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비율은 GDP 대비 89.6%로 선진국 평균(67.0%)을 크게 상회하지만, 일반정부의 총부채(D2) 비율은 GDP 대비 52.5%로 선진국 평균보다 20.3%p 낮다. 또한, 우리나라 국채 이자율이 명목 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재정 지속가능성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적정 수준의 부채 비율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된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현실에서는 성장 둔화가 재정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므로 긴축 재정보다는 성장률 제고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현재 기업과 가계는 미래 불확실성으로 투자와 소비를 유보하고 있지만, 정부는 양호한 재정 여력을 바탕으로 확장적 재정 정책을 통해 ‘경기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다만, 2차 추경 기준 총지출 증가율이 명목성장률 전망치와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향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증액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보다 과감한 재정 투입이 요구된다. 또한, 정부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세금으로 상환해야 하는 적자성 채무 비중이 확대되고 있지만, 조세 부담률은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재정 지출의 구조 조정과 더불어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위한 세제 개혁 방안 마련도 시급한 과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