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한국 국고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최종 편입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는 2022년 9월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지 약 2년 만의 결과이며, 외국인의 한국 국고채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성과가 한국 경제가 직면한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 해결의 마침표가 아닌, 새로운 시작점임을 시사한다.
WGBI는 영국 FTSE 러셀이 산출하는 글로벌 채권지수로, 세계 3대 채권지수 중 하나로 꼽히며 약 2조 5000억~3조 달러에 달하는 방대한 자금을 추종한다. WGBI 편입을 위한 정량적 기준인 국채 발행 잔액 500억 달러 이상, 신용등급 A- 이상은 이미 한국이 충족해왔다. 하지만 외국인의 시장 접근성, 즉 정성적 기준에서의 부족함이 그동안 편입의 발목을 잡아왔다.
이러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인 제도 개선에 나섰다. 2023년 1월 외국인 국고채 투자 비과세 조치를 시행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투자자등록제를 폐지했다. 이어 2024년 6월에는 유로클리어, 클리어스트림과의 국채종합계좌를 개통했으며, 7월에는 해외 소재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은행 간 시장 참여 허용, 비거주자 제3자 원화 거래 허용, 외환시장 개장 시간 연장 등 외환시장 개방 조치를 단행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국고채 시장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WGBI 편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FTSE Russell은 2024년 10월 기준으로 한국의 WGBI 내 편입 비중을 2.22%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향후 3년간 약 75조 원에서 90조 원에 이르는 신규 외국 자금 유입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WGBI 편입으로 인한 자금 유입은 재정정책 수행을 위한 자금 조달 비용을 절감시키고 외환시장 수급 안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WGBI 편입은 국채금리를 평균 0.2%~0.6% 낮추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시장 전반의 금리 하락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의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이는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과거 IMF 외환위기 경험으로 인해 외국 자본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상존했으나, 2014년 이후 한국 국민이 해외에 보유한 자산 규모가 외국인이 국내에 보유한 자산 규모를 초과하기 시작하면서 전반적인 상황은 개선되었다. 2024년 2분기 기준 8585억 달러에 달하는 순대외금융자산은 외국 자본 유출 우려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WGBI 편입은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 자본 유출입의 변동성을 더욱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WGBI를 추종하는 자금은 지수 구성 비중에 따라 수동적으로 운용되는 특성 때문에 유출입 변동성이 낮고 예측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 금융시장에 안정적인 외국 자본 유입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더불어, 외국인의 원화 채권 평균 잔존 만기가 현재 6.4년에서 한국 국고채 평균 만기인 12.6년에 근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외국인 투자의 장기화 및 단기 외채 비중 감소로 이어져 급격한 자금 유출 위험을 더욱 낮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한국 채권시장 안정성과 장기 투자 기반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과를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WGBI 편입이 한국 채권시장이 직면한 모든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잠재성장률 하락, 고령 인구 의무지출 확대는 구조적인 국채 발행 증가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상승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 정치 상황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 원화 가치 및 주식 가치 하락 배경에는 단기적 요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인구 구조 변화와 그로 인한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도 일정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WGBI 편입으로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성과를 이룩했다 하더라도, 이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더욱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