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 17년 만에 발표된 정상 간 합의문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양국 관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합의는 과거의 갈등을 넘어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계승하는 ‘한일 파트너십 선언 2.0’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사 문제의 봉합을 넘어, 미래 지향적인 협력 관계 구축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방문 직전 도쿄에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만남을 가진 타이밍 자체로 전략적 선택의 의미가 깊다. 특히 역사적인 한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성사된 이 만남은 한국의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 구도 하에서 한미일 공조를 중시하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할 때, 한국이 선제적으로 일본과의 협력 체제를 구축한 것은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는 데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8월 25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의 방일 성과 설명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한일 협력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토대임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트럼프 2.0 시대에 한일 간 대화와 협력이 전략적으로 필수 과제임을 방증한다.
한국과 일본은 대미 관계에서 관세, 통상 문제뿐만 아니라 군사, 안보적 차원에서도 인식을 공유하는 동병상련의 파트너다. 미·중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두 나라는 전략적인 이해와 이익을 공유할 부분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협력의 당위성이 더욱 부각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면 경험을 이 대통령과 공유하며 대미 협상의 지혜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양국이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공동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정상회담 상대로 일본을 선택하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국가 간 약속 이행 의사를 표명한 것은 그동안 제기되었던 반일·친중 성향에 대한 의구심과 오해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합의와 징용 합의 등 과거 국가 간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한일 관계의 신뢰와 안정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언론 역시 이러한 행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며 긍정적인 논평을 쏟아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지난 60년간의 한일 관계를 성찰하고 변화하는 글로벌 질서에 맞는 대일 관계 설정을 요구하는 시점에서, 이번 방일은 이재명 정부의 대일 외교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정상 간 셔틀 외교 복원을 통한 대화 채널 활성화 ▲워킹홀리데이 확대 등 젊은 세대 교류 촉진 ▲사회·경제 정책 분야 협력 틀 수립 ▲북한·안보 문제 공조 ▲국제 무대 협력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합의는 향후 양국 관계의 구체적인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한편, 현재 일본 정국이 혼돈과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고려할 때, 이번 회담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이시바 총리는 실각 위기에도 불구하고 역사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지닌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러한 지점에서 역사 인식 문제에 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상생 협력의 청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한국이 주도권을 잡아 정상 간 셔틀 외교를 복원하고 개선된 한일 관계를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데 이번 회담은 크게 기여했다. 잦은 지정학적 위기와 미·중 패권 갈등 속에서 공통의 고민을 안고 있는 한일이 전략적 협력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며, 이번 정상 간 만남은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 외교와 ‘이웃’과의 전략적 협력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