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은 거대한 규모의 대미 투자와 핵심 산업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라는 긍정적 성과를 안고 있지만, 이 발표 이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미국발 보호무역주의라는 거센 파고 속에서 통상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지만, 한국 경제의 안정과 미래 경쟁력 확보라는 더 큰 그림 속에서 이번 협상이 해결하려는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협상의 핵심은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이다. 이는 반도체, 이차전지, 조선, 에너지 등 한국의 주요 산업 분야 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 기지와 공급망을 확장하는 데 투입될 예정이다. 이러한 투자는 미국이 추진하는 제조업 복원 전략에도 부합하며, 한국 기업들에게는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공급 안정성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15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조선협력 전용 펀드는 주목할 만하다. 이 펀드는 공동 연구개발, 친환경 선박 건조, 미국 조선업 생태계 복원, 인력 양성 및 교류 등을 포함하며, 한국이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LNG선, 암모니아, 수소 선박 등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미국의 해운 및 국방 수요와 연결될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는 한국 조선업의 새로운 시장 개척뿐만 아니라, 양국 간 ‘해양 동맹’ 강화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2000억 달러 규모의 첨단산업 투자 역시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 기지 확대를 촉진할 것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셀트리온 등 주요 기업들은 이미 미국 내 거점 확장 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이번 협상 타결로 규제 및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투자 속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의 ‘자국 내 생산’ 원칙 강화 추세 속에서 한국 기업의 선제적 투자는 향후 미국 시장에서의 공급 안정성과 정책 우대 혜택을 동시에 확보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협상이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과제는 농축산물 시장 개방 압력을 성공적으로 방어해냈다는 점에 있다. EU나 일본이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주요 농산물 분야를 개방했던 것과 달리, 한국은 쌀, 쇠고기, 유제품 등 민감 품목을 개방하지 않으며 농업계의 안정을 확보하고 국내 여론을 고려한 전략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단기적인 시장 방어를 넘어, 국내 식량 안보와 지속 가능한 농업 생태계 유지, 그리고 향후 기후변화 및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국가 식량 전략의 일환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결국 이번 한미 관세협상 타결은 단순한 관세 문제 해결을 넘어, 한미 간 경제협력이 ‘양방향 가치 사슬’로 진화하는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한국은 미국 시장에서 생산 및 판매를 확대하고, 동시에 기술, 노동력, 자본을 공유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역시 한국을 단순한 공급처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향후 안보, 기술, 산업 정책 전반에서 양국 간 공조의 폭은 더욱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동맹의 경제적 내실을 강화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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