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가 끝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민은 바로 남은 음식 처리다. 특히 갈비찜, 잡채, 전과 같은 명절 대표 음식들은 푸짐하게 준비했다가 소량씩 냉장고에 남기 쉬워 다음 끼니에 대한 부담을 안겨준다. 물론 남은 음식을 그대로 데워 명절의 여운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조금만 아이디어를 더하면 전혀 다른 맛의 요리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박찬일 셰프는 명절 후 남은 갈비찜과 잡채, 전을 활용해 ‘갈비찜 잡채볶음밥’과 ‘전 두루치기’라는 두 가지 별미를 만드는 방법을 제안하며, 이는 명절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동시에 풍성한 식탁을 이어가는 실용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올해 추석은 예년과 달리 사과와 배가 잘 익는 시기에는 이르지만, 전반적인 추수 시기와는 얼추 맞아떨어진다. 추석은 본래 추수에 대한 감사와 조상에 대한 봉제를 기리는 축제이자 제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시기적절함은 명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날씨 또한 좋고 시절도 나쁘지 않아, 과거의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게 해준 원동력으로서 명절의 역할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2025년 9월 12일, 대한적십자사 대구달서구협의회와 다문화가족이 함께한 추석맞이 차례상 차리기 행사에서 보듯, 추석은 가족과 이웃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추석 상차림의 핵심은 ‘차례상’이다. 차례는 문자 그대로 차를 올려 조상에게 봉양하는 의례를 말하며, 과거 아시아에서 고급 음료였던 차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설날 상차림과 달리 추석에는 송편이 올라가며, 갈비찜과 잡채 등은 집집마다 유사한 음식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최근에는 갈비찜 대신 LA갈비를 구워 먹는 가정도 늘고 있지만, 여전히 갈비찜은 명절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박찬일 셰프의 어린 시절 회상에 따르면, 과거에는 소고기 자체가 귀해 명절에도 ‘갱’이라 불리는 소고기국이나 양이 적은 산적이 고기의 전부였다. 잘 사는 집에서는 소갈비찜이 올라왔는데,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꿈으로 남아 있을 정도다. 1960~70년대 신문 기사에서도 명절마다 갈비가 품귀 현상을 빚었다는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잘 사는 집을 묘사할 때 ‘갈비를 쟁여놓고 사는 집’이라는 표현이 사용될 만큼 갈비는 귀한 식재료였다. 갈비는 크게 구이와 찜으로 나뉘는데, 구이는 주로 사 먹는 음식이였고 찜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 방식이었다. 돼지갈비찜이 소갈비찜의 대안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갈비찜은 비교적 조리법이 간단하다. 시판 양념장을 활용해도 충분하며, 기본적인 배합은 간장, 설탕, 마늘, 양파, 파, 후추, 술을 넣고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 냉장 숙성한 뒤 푹 끓이는 것이다. 싱싱한 갈비라면 피를 빼는 과정을 생략해도 되며, 무와 당근을 추가하면 더욱 풍성한 맛을 낼 수 있다. 갈비찜은 뼈가 쑥 빠질 정도로 무르게 익히는 것이 중요하며, 압력솥을 사용하면 조리 시간을 단축하고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다만, 너무 오래 익히면 살이 흐물흐물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갈비찜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잡채는 명절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이렇게 남은 갈비찜과 잡채를 활용하면 ‘갈비찜 잡채볶음밥’을 만들 수 있다. 명절 막바지에 냉장고에서 발견되는 갈비찜 냄비에는 뼈와 함께 물러진 당근, 그리고 넉넉한 양념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남은 뼈를 추려내고 갈비찜 소스를 한 국자 정도 덜어내면 일인분 볶음밥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고추장 반 큰 술, 남은 잡채, 그리고 김가루 약간만 더하면 맛있는 볶음밥을 완성할 수 있다. 궁중팬을 달궈 갈비 소스를 넣고 뜨거워지면 잡채와 밥을 함께 넣어 잘 풀어가며 섞어준다. 이때 식용유는 따로 넣지 않는데, 갈비 소스와 잡채에 이미 충분한 기름기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재료가 잘 섞이면 고추장을 넣고 볶아 마무리한다. 고추장은 단맛과 매운맛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며, 취향에 따라 신김치를 다져 넣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김가루를 뿌리고 다진 파를 곁들이면 근사한 볶음밥이 완성된다.
명절의 또 다른 주요 음식인 전 역시 남는 경우가 많다. 전을 다시 부쳐 먹는 것도 좋지만, ‘전 두루치기’는 전혀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별미다. 두루치기는 조림이나 볶음과 유사하지만 즉석 요리 느낌이 강한 메뉴다. 이 요리를 위해 잘 익은 김치, 파, 고춧가루, 다진 마늘, 캔 참치, 그리고 치킨스톡을 준비한다. 냄비에 식용유 한 스푼을 두르고 달군 후 다진 마늘과 파를 가볍게 볶는다. 캔 참치를 넣고 휘저은 뒤 물을 붓고 치킨스톡을 약간 더한다. 여기에 적당한 크기로 자른 김치와 전을 넣고 고춧가루를 넣어 바글바글 끓이면 두루치기가 완성된다. 특히 두부전이 남았다면 두루치기에 더욱 잘 어울리며, 일반 두부를 넣어도 맛있다. 간을 보고 국간장이나 소금으로 맞추고, 국물이 짜글이처럼 적당히 졸아들면 좋다. 전에서 우러나온 기름기가 국물에 깊은 풍미를 더해준다. 비록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나고 ‘좋은 시절’이 다 지나갔다는 느낌을 받을 때쯤, 이 맛있는 두루치기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 박찬일 셰프는 오랜 기간 셰프로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탐구해왔다. 전국의 노포 식당 이야기를 소개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으며, 저서로는 <백년식당>과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