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 영상 기술이 쏟아져 나오며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면 남들보다 앞서 써보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러한 빠른 신기술 수용과 소셜 미디어 활용성은 과거 싸이월드 시절부터 이어져 온 한국 정보화 사회의 특징이다.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위기감이 세대 간 전승되며 내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소비재 분야에서는 유행 민감성으로 나타나지만, 산업과 인류의 미래를 뒤흔들 AI와 같은 신기술의 경우 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인간의 육체노동을 기계화한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지식노동의 외주화 및 기계화 과정인 AI의 전방위적 영향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하다.
현재 한국 사회는 AI 기술의 사회적 제어 방식에 대한 합의나 미래학적 전망, 철학적 숙고 없이 전속력으로 AI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이 자체 언어 기반 AI를 발전시킬 인프라를 갖춘 것은 분명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AI에 부여된 중요성, 속도, 방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과거 블록체인 ‘혁명’이나 메타버스가 가져올 ‘이상적 미래’에 대한 뜨거운 논의가 있었으나, 막대한 투자가 실질적인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프로젝트에 AI가 핵심 키워드로 등장하지 않으면 성공 가능성이 낮아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AI는 기존 신기술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장기적이고 불가역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생성형 영상 AI는 그 결과물의 매력만큼 영상 산업을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짧은 광고와 홍보 영상을 AI가 대체하면서 실사 영상 장비 대여 회사들이 문을 닫는가 하면, OTT의 등장으로 제작비는 상승하고 제작 편수는 줄어드는 현실에 AI의 충격파가 더해지고 있다.
물론 AI가 반드시 부정적인 변화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의 발명으로 초상화가들이 직업을 잃었지만 새로운 예술이 탄생했듯, AI 역시 장기적으로는 기존의 것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실천과 생산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용화된 AI 서비스의 실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버려질 유사 영상들을 양산하는 동시에, 세계적인 영화감독들은 AI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AI 친화적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영화 제작에 AI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전통적인 영화 제작 방식과 감독의 창의성, 철학이 더욱 빛을 발하는 시대를 예견했다. 이는 AI 활용으로 일반인의 표현력은 증가하지만, 창의적인 감독들은 더욱 개인적인 터치를 강화하는 영상 생산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반면, AI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창작자들도 등장하고 있다. 만화가 이현세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 학습을 통해 AI로 웹툰 그림을 생성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는 베토벤이 완성하지 못한 교향곡 10번을 AI가 완성하는 프로젝트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젝트 기획자들은 정작 수용자들이 이러한 결과물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AI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피아니스트나 이를 들으러 갈 청중이 있을지, 매번 보던 색감과 장면의 연속인 영상을 계속 보고 싶어 할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AI 산물이라는 이유만으로 흥미를 잃는 경험을 이미 하고 있다. 거대한 AI 쓰레기 더미 위에서 언젠가 AI 예술이 꽃피겠지만, 그 쓰레기 더미를 우리가 앞서 시간, 열정, 전기, 돈을 들여 쌓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사회 전체의 성찰이 필요하다. AI 개발에 막대한 전기가 소비되며 발생하는 환경 문제에 대한 우려 또한 AI 열기에 가려진 채 희미해지고 있다. 우리에게 선택권 없이 비민주적으로 주어지는 모든 기술에 대해 느리지만 확고하게 책임 있는 성찰을 할 집단 지성의 발현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