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최고의 K-드라마'에 오른 '폭싹 속았수다'의 미술 작업을 맡은 류성희(오른쪽)·최지혜 미술감독.
K콘텐츠가 세계적 찬사를 받는 동안, 그 화려한 영상미를 책임지는 미술팀은 열악한 인프라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시대극 하나를 위해 소품을 해외 직구하거나 가구점을 전전하며 ‘발명하듯’ 만들어내는 비효율이 반복된다. 이는 개인의 열정에 의존하는 한계를 만들고,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 이에 대한 구조적 해결책으로 ‘K콘텐츠 소품·세트 통합 데이터뱅크’ 구축을 제안한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성공은 철저한 고증과 디테일로 완성된 미술의 힘을 증명한다. 류성희, 최지혜 미술감독은 1950년대 제주를 재현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 조사는 물론, 수백 톤의 흙을 쌓아 지형을 만들고 현무암을 공수해 돌담을 세웠다. 이처럼 한 편의 명작 뒤에는 미술팀의 피와 땀이 서려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처럼 시대별 소품이 체계적으로 축적된 대형 인프라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술팀은 매번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는 제작비와 시간을 낭비시키고, 특히 자본이 부족한 독립영화나 소규모 드라마의 완성도를 저해하는 큰 장벽이 된다. 개인의 역량과 헌신만으로는 K콘텐츠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해결책은 공공 주도의 ‘K콘텐츠 소품·세트 통합 데이터뱅크’ 설립에 있다. 촬영이 끝난 드라마나 영화의 소품과 세트를 폐기하는 대신, 데이터뱅크가 이를 수집, 분류, 보관 후 다른 작품에 저렴하게 대여하는 시스템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부지 및 초기 설립 비용을 지원하고, 방송사 및 제작사 협회가 운영에 참여하는 민관 협력 모델로 구축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소품 목록과 이미지를 제공하여 누구나 쉽게 검색하고 대여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인다. 이는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K콘텐츠의 시각 자산을 보존하고 재활용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다.
데이터뱅크 구축은 K콘텐츠 제작 생태계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첫째, 제작사와 미술팀은 소품 조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창작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둘째, 소규모 제작사도 높은 완성도의 시대극이나 장르물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콘텐츠의 다양성이 확보된다. 셋째, 자원의 재활용을 통해 환경 보호에 기여하며, 경험 많은 스태프들이 안정적으로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산업 구조를 만든다. K콘텐츠의 세계적 명성을 일회성 성공이 아닌, 튼튼한 시스템으로 뒷받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