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르완다 키갈리에서 열린 국제표준화기구(ISO) 총회에서 한국이 기술이사회(TMB) 연임에 실패하면서, 국제 표준화 무대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영향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국제표준화기구 전문가 간담회’에서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기술 표준화 역량을 인정받고 2028년까지 기술이사국으로서 ISO의 기술 정책 결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이번 총회 결과는 이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기술이사회(TMB)는 ISO 내에서 신규 표준위원회 설립 및 해산, 기존 표준위원회 간의 업무 조정, 의장국 임명 등 ISO의 표준 활동을 실질적으로 총괄하고 조정하는 매우 중요한 핵심 의사결정 기구다. 이러한 TMB에서 한국이 연임에 실패했다는 것은, 앞으로 한국이 국제 표준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발언권을 상당 부분 상실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이 추진하는 기술 표준화 전략과 정책 추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한편, 이번 총회에서 한국은 ‘GPS 기반 개인 위치 서비스 기술’ 분야의 표준위원회 설립을 제안하고, ISO 회원국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워크숍을 주관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또한, 캐나다, 이탈리아 등 주요국의 표준화 기관과 협력 MOU를 체결하고 오는 12월 개최될 ‘국제 AI 표준 서밋’에 주요 인사들의 참여를 요청하는 등 국제 협력 강화에도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노력들은 한국의 기술 표준화 역량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지만, TMB 연임 실패라는 결과는 이러한 노력의 성과를 상쇄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과거 김대자 국표원장은 ISO 기술이사국 연임을 계기로 국제 표준화 무대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더욱 확고히 하고, 국제사회가 신뢰하는 표준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TMB 연임 실패는 이러한 목표 달성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한국은 TMB에서의 영향력 상실이라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국제 표준화 논의에서 한국의 입지를 어떻게 재정립해 나갈지에 대한 심도 깊은 전략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