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인이 열광하는 ‘한류’는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은 김춘수, 서정주, 김용락 시인의 작품과 나짐 히크메트의 시를 빌려 한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네 단계에 걸쳐 분석한다. 이는 단순한 문화 현상을 넘어, 한국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이 응축된 결과이자 세계와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진정한 여행’임을 강조한다.
◆ 이름 붙여진 순간, 실체가 된 한류: 김춘수의 ‘꽃’
한류는 처음에는 그저 ‘몸짓’에 불과했다. 한국 드라마가 해외로 수출되고 K팝이 세계 팬들의 환호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이는 하나의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중화권 매체를 중심으로 ‘한류(Hallyu)’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처럼, 세계가 한류에 이름을 부여하고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문화적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한류는 수동적인 소비 대상이 아니라,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불리는 이름’을 얻고 정체성을 부여받으며 탄생했다. 이는 단순한 존재론을 넘어, 인식론적으로 한류가 세계 속에 ‘들어왔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역사적 울음 끝에 피어난 ‘한 송이 국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오늘날의 한류는 하루아침에 피어난 꽃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분단과 동족상잔의 아픔,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기다림, 즉 ‘역사적 울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는 구절처럼, 한류는 한국 현대사의 수난과 인고라는 ‘소쩍새 울음’과 ‘먹구름 속 천둥’을 거쳐 응결된 문화적 승화물이다. 이는 단절된 흐름이 아닌, 연속된 역사 속에서 한국 사회가 겪은 시련과 성공, 회복의 총체적 결정체로서 존재한다. 이 ‘기억의 꽃’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존재의 증언이자 시대의 결과로서 피어났으며, 그 의미와 대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언어를 넘어 마음을 두드리는 공감의 울림: 김용락의 ‘BTS에게’
한류의 핵심 힘은 ‘진정성’에 있다. 김용락 시인의 ‘BTS에게’에서 “LOVE MYSELF, LOVE YOURSELF! / 나는 그대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게 되었지 /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 비로소 가슴이 뛰고 인간이 된다는 것을”이라는 고백처럼, BTS는 언어를 초월하여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감정의 번역자이자 시대의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들의 노래는 진심의 파동이며, 춤과 몸짓으로 쓰는 시다. 잘 만들어진 문화상품 이전에, 진심으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서 시작된 K-콘텐츠는 팬덤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공감의 공동체’이자 ‘문화의 공동 창작자’로 이끌었다. ‘다른 언어로도 마음속을 두드리는’ K-팝, K-드라마, K-콘텐츠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세계의 감수성과 접속하며 한류의 핵심 비결을 보여준다.
◆ 아직 쓰이지 않은 시, 계속될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
한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에 있다. 나짐 히크메트 시인이 말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것처럼, 한류 역시 절정에 이르지 않았으며, 더 많은 서사, 더 깊은 공감, 더 다양한 목소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현재의 성과에 자만하거나 자족해서는 안 된다. 한류가 추구해야 할 미래상은 단순한 외연 확장이 아닌, 지속 가능한 가치, 다문화적 포용, 인간성의 회복에 있다. K-콘텐츠는 세계를 향해 말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 안의 진실도 말해야 하며, 외연을 넓히되 내면을 잊지 않을 때 ‘진정한 여행’은 계속될 수 있다. 창·제작자에게는 영감과 상상을, 정책 담당자에게는 기획과 비전을 제공하며, 수용자들에게는 향수와 감동을 선사해야 할 한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