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 발표 이후 청년 일자리 문제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며 사회적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쉬었음’ 청년이라 불리는, 학업, 취업 준비, 육아·가사 등 구체적인 사유 없이 노동 시장에서 이탈한 인구가 2020년부터 40만 명대를 지속하며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보다 20만 명 이상 증가한 상황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고용 불균형을 보여준다. 이러한 청년 인력의 이탈은 단순히 나약함의 문제가 아니라, 최저시급 이하의 급여, 열악한 근무 환경, 사적 심부름 강요, 직장 내 괴롭힘 등 ‘상식적’이지 못한 노동 시장의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풀이된다. 연봉 2823만 원 이상, 통근 시간 63분 이내, 주 3.14회 이하의 추가 근무,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업무 등 ‘쉬었음’ 청년들이 희망하는 일자리는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닌,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할 ‘상식적’ 일자리라는 점에서 현 상황의 심각성을 더한다.
한국의 일자리 현황은 65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의 지속적인 증가와 청년 일자리의 감소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8월 기준으로 청년 일자리는 1991~2025년 사이 약 200만 개가 감소한 반면, 65세 이상 일자리는 368만 개 이상 증가하였다. 그 결과, 청년 일자리 대 65세 이상 일자리 비율은 1991년 8.3배에서 올해 0.8배로 급감하며, 지난해부터는 고령층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를 추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OECD 평균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OECD 국가들의 평균은 65세 이상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의 59%에도 미치지 못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청년 일자리가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도 고령층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를 넘어서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거리를 창출하는 산업 자체의 문제에 있다. 특히 청년 일자리 부족은 신산업의 부진과 직결된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었던 제조업의 일자리 비중은 1991년 약 27%에서 올해 15%로 급감하며, 일본이 50년에 걸쳐 진행한 탈공업화 과정을 우리는 33년 만에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문제는 한국의 제조업이 미국 등 선진국이 주도하는 산업 생태계에서 설계, 디자인 등 고부가가치 사업 서비스는 외부 의존도가 높은, 즉 ‘자기 완결성’을 결여한 채 생산 부문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줄어든 제조업 일자리를 대체한 것은 대표적인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인 자영업의 증가였으며, 이는 자영업자 평균 소득이 급여 생활자 평균 소득의 35%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형 ‘소득의 초양극화’ 현상을 야기했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은 결혼율 및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자영업자의 고령화 역시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1차 베이비붐 세대가 60세가 된 2015년 이후 6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은 37%까지 급증하였다. 반면, 신산업 육성 실패는 청년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25~34세 핵심 노동력의 취업자 규모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8월 606만 명에서 올해 8월 535만 명으로 70만 명 이상 감소했으며, 30~34세 일자리 역시 1991년 8월 310만 명에서 2025년 8월 294만 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취업자가 339만 명이나 증가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처럼 고령층이 레드오션인 자영업이나 정부 주도 일자리에 의존하는 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은 한국의 산업 생태계가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기술혁명, 즉 인터넷 및 IT 혁명으로 인한 ‘디지털 생태계’의 개막, 플랫폼 사업모델 및 모바일 혁명을 통한 ‘데이터 혁명’, 그리고 이어진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은 IT 강국, 신성장동력 육성 등으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 있어 실망스러운 결과는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및 혁신 노력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 도약과 초혁신 경제로의 대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AI 대전환이 ‘괜찮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난 30년간의 산업 정책에 대한 철저한 자기 비판이 요구된다. 특히,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했던 산업화 경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AI 3대 강국’이라는 목표 달성은 미국의 산업 생태계 일부를 떠맡는 ‘식민지형 산업화’가 아닌, 자기 완결적 디지털 생태계 구축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미국, 중국 등과 달리 디지털 생태계의 출발점인 플랫폼 및 데이터 경제의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 그리고 획일주의, 줄세우기, 극한 경쟁 속에서 ‘모노칼라 인간형’을 배출하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 하에서는 AI 모델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 교육 시스템은 과제를 발굴하고, 타인과의 협력을 통해 전에 없던 답을 도출하는 인재 양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이 미국처럼 플랫폼 사업 모델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이유 역시 <위계와 경쟁>에 익숙한 ‘모노칼라 인간형’이 <분산, 이익 공유,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사업 모델의 문화와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는 한국이 ‘데이터 혁명’과 ‘AI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한 주요 원인이며, 삼성전자가 모바일 기기 제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도체 사업마저 AI 대전환 과정에서 2류 기업으로 전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AI 기반 산업체계의 대전환에서 인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AI 모델을 활용하여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뒤처진 플랫폼 사업 모델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재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AI 3대 강국’은 인재 없이는 불가능하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 국민 맞춤형 AI 교육’과 ‘쉬었음’ 청년에 대한 생활비 지원을 포함한 ‘AI 전사 육성’을 청년 고용 부진 대책으로 제시한 배경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하지만 역대 정권의 실패한 산업 정책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기존 시스템이나 기득권과의 ‘결별’이 선행되어야 한다. ‘AI 전사’ 육성은 획일주의와 줄세우기, 극한 경쟁 환경에서 양산되는 모노칼라 인재를 배출하는 현행 교육 시스템과는 양립 불가능하다. 영국이 근대 산업문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 혁명을 통한 새로운 인재 육성과 사회 지배 세력의 교체, 그리고 사회 혁신을 통해 산업혁명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혁명 없는 AI 대전환의 성공은 어렵다. 이는 AI 인프라와 모델 분야에서 2대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18.9%에 달하는 높은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AI 전사들의 새로운 시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부동산 모르핀’ 투입을 중단하고 ‘부동산 카르텔’과의 결별이 필요하며, AI 교육을 받은 전 국민이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여유를 제공하기 위해 ‘쉬었음’ 청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생계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기적 사회 소득 제도화가 시급하다. 사회 소득의 제도화는 초혁신 경제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시드머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