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점과 산업 현장의 어려움은 공통적으로 ‘생태계’의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실효성을 잃고, 결과적으로 특정 지역의 공동화나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과거 미국 정치 역사에서 경제 문제를 부각시켜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과거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의 벽에는 “Change vs. more of the same”, “The economy, stupid”, “Don’t forget health care”라는 세 가지 메시지가 걸려 있었다.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가 걸프전 승리로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It’s the economy, stupid(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를 통해 당시 미국 경제가 처한 경기 침체와 실업 증가라는 실질적인 문제에 유권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전략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국내 문제로 돌리며 경제에 무심하다는 부시의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결국 아칸소 주지사였던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사례는 당면한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 정책 성공의 핵심임을 시사한다.
생태계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존재한다. 첫째, ‘종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종들이 유기적으로 얽히고설키며 생태계 전체를 지탱한다.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상호 수정을 돕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은 단일 품종 감자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생태계가 파괴되었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단일 감자 품종에 의존하던 아일랜드는 감자역병이 창궐하자 1845년부터 1852년까지 백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굶주림으로 사망하는 참극을 겪었다.
둘째,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이다. 태양 에너지가 식물을 거쳐 동물과 미생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원활해야 생태계는 유지된다. 나무가 쓰러졌을 때 곰팡이, 버섯, 세균 등이 이를 분해하여 토양으로 되돌리는 과정처럼, 끊임없는 순환이야말로 생태계의 근간이다. 이러한 순환 구조가 깨지면 생태계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셋째,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닫힌 생태계는 유전적 고립으로 인해 취약해진다. 외부와의 종자, 즉 유전자 교류는 생태계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근친교배 우울증’ 또는 ‘합스부르크 증후군’은 폐쇄된 가문 내에서 반복되는 근친 결혼이 초래하는 필연적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개방성과 연결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를 간과한 정책들은 결국 현실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지방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조성된 혁신도시는 그 자체로 ‘생태계’를 갖추지 못해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젊은 맞벌이 부부의 경우, 배우자가 정착할 일자리가 없다면 혁신도시로의 이주를 선택하기 어렵다. 이는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못 가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동시에, 많은 지방 도시들은 신도심 개발에 치중하면서 원도심 공동화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인구가 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기존의 원도심은 유령도시처럼 텅 비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창원과 부산처럼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대중교통 시스템의 미비로 인해 심리적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청년들이 간절히 원하는 ‘통근 전철’과 같은 교통망 구축 사업이 타당성 검토 단계에서 늘 난항을 겪는 것은, 이러한 생태계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산업 현장에서도 ‘생태계’ 부재의 문제는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비해 파운드리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 역시 생태계 구축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파운드리 사업은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패키징 및 후공정 등 복잡하게 얽힌 생태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전문 칩 설계 회사가 설계도를 만들면, 디자인 스튜디오가 파운드리 공정에 맞게 이를 다듬고, IP 회사는 재설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제공한다. 칩 제작 후에는 패키징 및 후공정을 거쳐 최종 제품으로 완성된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들과의 협력 및 기술 축적 측면에서 TSMC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으며, 이는 IP 파트너 수에서 10배, 패키징 기술에서 10년의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변모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개별적인 노력에만 의존한 것이 패배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결론적으로, 세상사의 대부분은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작동한다. 생태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정책은 ‘가짜’이며, 결국 해가 지면 귀신이 나올 듯 텅 비어버린 원도심, 독수공방 신세가 된 혁신도시와 같은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만약 빌 클린턴에게 지금의 상황을 묻는다면, 그는 분명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