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세계 최저 출산율이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며 인구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2024년 잠시 소폭 상승세를 보였으나, 지속적인 출생아 수 감소는 단순한 통계 수치를 넘어 지역 소멸, 경제 성장 둔화, 사회복지 부담 증가 등 미래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전국 지방 중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이 이미 절반을 넘어서며, 경북 의성군과 같이 고령 인구가 50%에 육박하고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 통폐합이 불가피한 곳에서는 지역의 일자리 축소, 청년 유출, 출산 감소라는 악순환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인구 위기 속에서 이제는 ‘한 명이라도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는 조건’ 마련에 국한되지 않고, ‘아이를 낳고도 모든 구성원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때이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 역시 출생률 감소라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현실적인 양육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수도 서울과 출생률 증가율 전국 1위인 인천시의 양육 정책을 비교 분석한 결과, 정책의 총액보다는 시민들의 체감도와 정책에 대한 접근성이 출산 결정에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작용함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는 출산지원금, 아이돌봄 서비스, 공공보육시설 확충 등 다각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주거 비용과 육아 시설 접근성의 불균형으로 인해 정책 효과가 제한적인 측면이 있다. 반면 인천시는 산후조리원 비용 지원, 첫째부터 육아수당 지급, ‘아이 플러스 시리즈’, ‘천사지원금’, 육아종합지원센터 확대 등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들을 통해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인천시의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브랜드화를 통한 육아 지원 정책의 체계화는 공공어린이집 비율 확대, 부모 교육 및 심리 지원 확대 등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부모들의 양육 불안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경우, 2024년 출산 의향이 68.5%로 전년 대비 12% 상승하였으나, 정책이 분산적으로 운영되어 육아가 고립되는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돌봄 공백 해소를 위한 대안 부족은 저출생 극복을 위해 과밀 지역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저출생 문제 극복에 실효성을 보인 육아 정책들의 핵심은 ‘생활 밀착형 정책’과 ‘민간-공공 협력 체계’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산시의 ‘100원 택시-산모 전용’, 인천시의 ‘가족친화 인증제’, 광주시의 ‘출산축하용품 패키지 제공’ 등은 소규모 예산으로도 높은 호응을 얻으며 중소도시들이 참고할 만한 성공적인 정책 모델을 제시한다. 또한, 아빠 육아휴직 장려, 탄력근무제 의무화, 출산 직후 부모 상담 서비스 등은 단기적인 출산율 개선뿐 아니라 양육의 지속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실효성 있는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제도적 연속성 확보이다. 정권 교체에 따른 출산 정책의 단절을 막기 위해 국가 기본법에 근거한 출산-육아 정책 통합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둘째, 기업과의 파트너십 강화이다. 육아휴직 및 유연근무제를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가족친화기업 인증 확대, 조직 문화 변화, 정책 사용 인센티브제 도입이 시급하며,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셋째, 시민 인식 전환이다. 출산을 더 이상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절실하며, ‘아이 키우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을 ‘기쁨’으로 바꾸는 건강한 문화적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 도시는 단순히 출산율이 높은 도시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자랑스러운 도시, 부모가 존중받는 도시, 함께 돌보는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도시여야 한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는 공공 보육, 안전한 양육 환경, 촘촘한 지역사회 커뮤니티가 갖춰진 곳이며, 부모가 행복한 도시는 일과 육아의 균형을 지원하는 기업 문화와 부모를 지지하고 인정하는 지역사회 문화가 정착된 곳이다. 아이를 낳고 살고 싶은 도시는 출산 결심부터 양육 전 과정에 걸쳐 행정의 지원과 미래를 보장받는 곳이다. 자랑하고 싶은 도시는 부모와 아이가 시민으로서 누릴 권리를 안전하고 신속하게 제공받으며, 모든 시민이 동등한 위치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저출생을 극복하는 길이자,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과정이다. 저출생은 우리 사회의 위기이지만,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재설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정부 정책을 바탕으로 지자체, 기업, 시민이 역할을 분담하고 현재와 미래의 공동체 회복을 위해 협력한다면, 아이들이 웃으며 자랄 수 있는 사회는 결코 멀지 않다. 이제 우리는 숫자가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는 조건’을 넘어, ‘아이를 낳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꿈꾸는 미래일 것이다.
◆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김기탁 소장은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자문위원이자 가치자람사회적협동조합의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 활동을 통해 세 아이와 소통하는 아빠로 성장했으며, 아빠 육아와 남성 육아휴직 문화 확산을 위해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