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남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부부 갈등이 심화되는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도 빠르게 대두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노후 준비 과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위험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부부 갈등이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 또는 ‘부원병’이라는 용어로까지 불리며 심각한 건강 문제와 황혼 이혼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퇴직한 공무원들의 퇴직 수기 공모에 참여했던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연구회 대표는 105건의 수기 중 상당수가 퇴직 후 ‘절벽 위에 선 기분’이라며 갈 곳이 없어 힘들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놀랐다고 밝혔다. 한 고위직 공무원은 퇴직 후 3개월간 집에 머물다 답답함을 느끼고 아내 눈치를 보는 상황에 괴로워하며 노인보호센터 일자리를 구해 월 70만원의 수입과 건강보험료 30만원을 벌어다 주자 아내가 ‘천사로 바뀌었다’는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는 퇴직 후 남편의 일상적인 가사 참여나 생활 습관이 오히려 아내에게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20년 앞서 고령사회를 경험한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편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은 우울증, 고혈압, 천식, 공황장애 등 다양한 건강 이상 증상으로 나타나며, 심할 경우 중년·황혼 이혼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 20년 이상 결혼 생활을 한 부부의 이혼 비율은 1990년 14%에서 2023년 23%로 증가했으며,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이혼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한국과 일본이 남편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동안 부부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분단된 세계’ 문화가 퇴직 후 남편이 집에 머물면서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20여 년간 전체 이혼율은 낮아졌으나, 중년·황혼 이혼의 비율은 1990년 5%에서 2023년 36%로 급증했다. 이는 퇴직 후 부부 갈등이 중년·황혼 이혼의 주요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언론 보도와 노후 설계 강의 현장에서도 이러한 고민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퇴직 후 노후자금 마련만큼이나 부부의 화목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절실하다. 퇴직 후 부부가 겪는 갈등은 준비되지 않은 동거 생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노후 설계 전문가들은 퇴직을 앞둔 부부들에게 퇴직 후에도 각자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인기 있는 남편의 조건으로 ‘집안일을 잘 돕는 남편’이나 ‘요리 잘하는 남편’이 아닌 ‘낮에는 집에 없는 남편’이 꼽힐 정도라는 오가와 유리 씨의 기고는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부부 모두가 낮 동안 수입을 얻는 일이든, 사회공헌활동이든, 취미 활동이든, 혹은 이 세 가지를 겸한 활동이든, 각자만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갖고 이를 존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퇴직 후에도 행복하고 안정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하며 품격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