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도입된 지 37년 만에 보험료율 인상이 단행되며, 18년간 반복되었던 개혁 논의가 마침내 일단락되었다. 이는 단순한 보험료율 인상을 넘어, 기금 고갈이라는 임박한 위기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연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과거 5년마다 재정계산 시점마다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번번이 유예되었던 전례를 볼 때, 이번 개혁은 정치권의 결단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룬 중대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번 개혁안의 핵심은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로 인상하는 모수개혁이다. 이는 국민의 부담 능력을 고려하면서도 노후소득 보장성을 일정 수준 강화하려는 정치적 절충안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모수개혁을 통해 당장 수년간은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 지출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기금의 운용수익이 재정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즉, 기금 고갈 시점을 8~15년 연장하는 효과와 함께,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혁은 제도의 ‘완결’이 아닌, 지속가능한 연금을 향한 로드맵의 ‘출발점’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이번 개혁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연금 재정 운영 방식의 변화를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 중 하나로, 2050년에는 인구의 40%가 65세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연금재정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는 세대 간 정의와 제도 존속을 위한 핵심 과제다. 전통적인 부과방식(pay-as-you-go) 연금은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보험료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진다. 하지만 이번 보험료율 인상을 통해 한국은 현재 1,200조 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적립기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보험료 수입과 운용수익이라는 두 개의 재정 축이 기능하는 ‘준 적립방식(partially funded)’으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노동인구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고, 미래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보험료 부담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더불어 이번 개혁은 청년 세대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조치들도 포함했다. 국민연금법에 국가의 연금지급 책임을 명문화하고, 첫째아 출산 크레딧 12개월, 군 복무 크레딧 12개월을 인정하며,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확대 등 청년층의 연금 가입 기간을 보완하고 보장성을 높이는 장치들이 마련되었다. 이는 미래세대뿐만 아니라 현재 제도를 이용하는 모든 국민에게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반영한다.
이번 개혁은 단순한 모수개혁을 넘어, 향후 본격화될 구조개혁 논의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향후 보험료율 추가 인상, 수급연령 상향,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이 필요하다. 또한, 보장성 강화를 위해 기초연금은 빈곤 해소에 집중하고, 국민연금은 소득 비례 연금으로 재편하며, 적용 포괄성과 가입 기간 확대, 퇴직연금 내실화 등 다층 노후소득 체계 정비도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공적연금은 특정 세대의 이익이 아닌, 세대 간 신뢰와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기반 인프라로서, 이번 개혁은 그 원칙을 지키면서 미래를 향한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