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며 인구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점에 직면했다. 2024년 소폭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장기적으로 감소하는 출생아 수는 단순한 수치상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지역 소멸, 경제 성장 둔화, 사회복지 부담 증가 등 미래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이제는 ‘한 명이라도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는 조건’ 마련이라는 기존의 접근 방식을 넘어, ‘아이를 낳고도 부모와 아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이다.
전국 지방 중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이 절반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저출산 문제가 얼마나 시급한 사안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전라북도 고창군, 경상북도 의성군, 강원도 인제군 등은 이미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었으며, 20년 내 행정 기능, 교육, 의료 서비스 등 기본적인 사회 시스템이 무력화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경북 의성군의 경우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50%에 육박하고,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 통폐합이 현실화되는 등 지역 소멸의 파고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이는 곧 지역 일자리 감소, 청년층 유출, 그리고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지역 소멸 위협은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과밀화된 도시에서도 현실적인 양육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출생률 증가율 전국 1위를 기록한 인천시의 양육 정책은 이러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서울시가 출산 지원금, 아이 돌봄 서비스, 공공 보육 시설 확충 등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주거 비용과 육아 시설 접근성의 불균형으로 인해 정책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반면, 인천시는 산후조리원 비용 지원, 첫째부터 육아 수당 지급, ‘아이 플러스 시리즈’, ‘천사 지원금’, 육아종합지원센터 확대 등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들을 통해 높은 만족도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는 정책의 총액 규모보다는 시민들의 체감도와 접근성이 출산 결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천시의 성공적인 정책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한 현금성 지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양육 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브랜드화를 통해 육아 지원 정책을 체계적으로 연계하고, 공공 어린이집 비율 확대, 부모 교육 및 심리 지원 확대 등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부모들의 양육 불안감을 해소하고 있다. 비록 서울시가 2024년 출산 의향률 68.5%로 전년 대비 12% 상승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으나, 정책들이 분산되어 작동하고 육아가 고립되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돌봄 공백을 해결할 대안 부족은 과밀 지역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저출생 문제 극복에 있어 실효성을 보인 육아 정책들의 공통점은 ‘생활 밀착형 정책’과 ‘민간-공공 협력 체계’ 구축에 있다. 아산시의 ‘100원 택시-산모 전용’, 인천시의 ‘가족친화 인증제’, 광주시의 ‘출산축하용품 패키지 제공’과 같은 정책들은 소규모 예산으로도 큰 호응을 얻으며 중소도시들의 좋은 정책 모델이 되고 있다. 또한, 아빠의 육아휴직 장려, 탄력근무제 의무화, 출산 직후 부모 상담 서비스 제공 등은 단기적인 출산율 개선뿐만 아니라 양육의 지속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재의 효과적인 정책들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 ‘제도적 연속성’ 확보이다. 정부 및 지자체의 정권 교체에도 출산 정책이 단절되지 않도록, 국가 기본법에 근거한 출산-육아 정책 통합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둘째, ‘기업과의 파트너십’ 강화이다. 육아휴직, 유연근무제를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가족친화기업 인증 및 조직 문화 변화를 유도하고, 정책 사용에 대한 인센티브제를 도입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셋째, ‘시민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출산은 더 이상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하며, ‘아이 키우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을 ‘기쁨’으로 바꾸는 건강한 문화적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도시는 단순히 출산율이 높은 도시가 아니다. 아이 키우는 것이 자랑스러운 도시, 부모가 존중받는 도시, 함께 돌보는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도시여야 한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는 공공 보육 시스템, 안전한 양육 환경, 촘촘한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갖춘 곳이다. 부모가 행복한 도시는 일과 육아의 균형을 지원하는 기업 문화와 아이 키우는 부모를 지지하고 인정하는 지역사회 문화가 정착된 곳이다. 아이를 낳고 살고 싶은 도시는 출산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양육의 전 과정을 함께하는 행정적 지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는 곳이다. 자랑하고 싶은 도시는 부모와 아이가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안전하고 신속하게 제공받으며, 모든 시민이 동등한 위치에서 주어지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길이다. 저출생은 분명 우리 사회의 위기이지만,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재설계할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정부 정책을 기반으로 각 지자체, 기업, 시민들이 역할을 분담하고 현재와 미래의 공동체 회복을 위해 협력한다면, 아이들이 웃으며 자랄 수 있는 사회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이제는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한 명이라도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는 조건’을 넘어, ‘아이를 낳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미래일 것이다.
◆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김기탁 소장은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자문위원이자 가치자람사회적협동조합에서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 활동을 통해 세 아이와 함께 소통하는 아빠로서, 아빠 육아와 남성 육아휴직 인식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