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중증장애인생산품 박람회—낯섦에서 일상으로’가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렸다. 이 박람회는 중증장애인 생산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보호나 시혜의 대상’에서 ‘일상에서 당연히 소비되는 제품’으로 전환하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기획되었다. 초록·노랑 천막 아래 다양한 부스가 마련되었고, 상담장을 향해 서두르는 공공기관 관계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제품을 살펴보는 시민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물건을 설명하는 생산자들까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낯섦에서 일상으로’라는 주제를 현장에서 풀어내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장애인 생산품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주는 종합 시장이자 정책 현장이었다.
박람회장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은 곳은 직업재활 체험 부스였다. 이곳에서는 종이 쇼핑백 만들기, 꽃 만들기 등 간단한 체험 활동이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단순히 종이를 접고 끈을 꿰는 과정을 통해, 제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필요한 생산 현장의 노동 강도와 세심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체험 도중 실수가 있었을 때, 옆에서 도와주는 작업장 선생님의 도움은 가르침보다는 동료애에 가까웠으며, 모두에게 뿌듯함을 선사했다. 완성된 쇼핑백에는 ‘일상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중증장애인 생산품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비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한 어머니는 직접 체험하며 제품 하나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체험에 참여한 청년 장애인 박O광 씨(32)는 쇼핑백 손잡이 꿰매는 과정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마지막 매듭을 완성했을 때 느낀 성취감을 전했다. 그는 장애인 생산품이 특별한 물건이 아닌, 정직하게 만든 생활 속 제품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이O도 씨(27)는 자신이 만든 제품을 누군가 실제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으며, 이번 경험이 일자리로 이어져 더 많은 청년 장애인이 안정적인 일터에서 일상을 이어가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낯섦에서 일상으로’라는 주제가 자신의 삶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전시장 안쪽에서는 ‘래그랜느 쿠키’, ‘쌤물자리’ 등 다양한 기업들의 제품들이 관람객을 맞았다. ‘래그랜느 쿠키’ 부스에서는 달콤한 향과 함께 HACCP 인증 문구가 신뢰를 더했고, ‘쌤물자리’에서는 담백한 누룽지와 국수, 곡물 가공품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시되었다. 구립강서구직업재활센터는 제설제와 세정제 등 산업 현장에서도 쓰이는 제품을 선보이며 ‘장애인 생산품=소품’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이러한 제품들은 시민과 기업 관계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제품 앞에 선 생산자들은 단순히 동정심이 아닌, ‘맛·품질·가격’으로 자신들의 경쟁력을 증명하며 당당한 표정을 보였다. 관람객들은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제품에 대한 설명을 주의 깊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에서는 우선구매 유공자 포상과 함께, 미래 판로를 약속하는 협약식이 이어졌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스마트 모바일 솔루션 협약식, 한국교직원공제회, 한국장애인개발원, 전국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협의회의 협약식 등이 진행되었다. 행사장 통로에서는 공공 조달 담당자와 생산 시설 종사자가 납품 조건, 포장 규격, 단가, 납기, A/S 등을 논의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무대 위의 포상과 통로에서의 대화는 서로 다른 높이였지만, ‘안정적인 수요와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동일한 지향점을 향하고 있었다.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제도는 경쟁 고용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 제도는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지방공기업 등 대통령령과 관련 법률에 따라 정해진 공공기관이 해당 생산 시설의 제품과 서비스를 연간 총구매액의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구매 방식은 생산시설·판매시설을 통한 직접 구매, 관련 기관의 수의계약 대행, 공공기관 계약 시 중증장애인생산품 포함 간접구매 등 다양하다. 이러한 제도는 단순한 상업적 거래를 넘어 장애인의 자립을 돕고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실질적인 기반을 마련한다. 이번 박람회에서 선보인 제품들은 앞으로도 온라인몰, 직영점, 협동조합 매장, 지역 행사장에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공공기관의 우선구매는 숫자로 기록되지만, 시민들의 재구매는 신뢰로 축적된다. 중요한 것은 첫 경험을 다음 소비로 연결하는 것이다. 행사장에서 만난 손끝의 성실함, 무대 위의 약속, 통로에서 오간 대화는 ‘낯섦에서 일상으로’라는 주제를 구호가 아닌 현실로 만들어냈다. 쿠키 한 봉지, 누룽지 한 팩, 쇼핑백 하나가 누군가의 내일 출근을 가능하게 한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진실이 이번 박람회의 가장 큰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