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은 날 공원에서 어르신들이 낡고 고장난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대한민국이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를 시사한다. 지자체에서 조성한 깔끔한 평상이나 벤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이 굳이 폐기물 스티커까지 붙은 낡은 의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시설물 노후화의 문제를 넘어, 정책 대상자의 실질적인 삶의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 설계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어르신들은 새로 설치된 벤치가 등받이가 없고 딱딱하여 오래 앉아 있기에 불편하며,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차가워 앉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반면, 낡고 허름할지언정 등받이가 있고 좌판에 쿠션이 있는 폐의자는 훨씬 편안하다고 말한다. 이는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인 고영호 위원이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건축과 도시공간” 연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실제 사용자들의 경험과 인식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와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와 같은 국가승인통계를 통해 어르신들의 건강, 기능 상태, 거주 주택의 종류와 편리성 등을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들은 주로 ‘집에 방은 몇 개인지’, ‘현재 거주지에서 몇 년 거주했는지’와 같은 사실 확인에 집중될 뿐, 어르신들이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생활 환경의 불편함이나 위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집 현관은 이용하시는데 무엇이 불편하십니까?”, “공원과 공원 시설물 이용에는 무엇이 불편하십니까?”와 같은 질문을 통해 일상적인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경청해야 국민 체감형 정책이 수립될 수 있다.
건축공간연구원의 사례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구체화한다. 어르신들은 욕조의 높은 높이 때문에 들어가고 나오기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느끼며, 이에 대한 적정 높이의 욕조, 편안한 변기, 미끄럼 방지 바닥재 및 안전 손잡이 설치 지원의 시급성을 제기한다. 또한, 보행로의 고르지 못한 보도블록이나 짧은 보행 신호로 인해 낙상을 경험하는 등 외부 활동 시에도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경험과 불편 사항을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바로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6~2030)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향후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일상적인 실태와 생생한 경험이 충분히 반영된다면, 단순히 낡은 의자가 아닌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 속에서 어르신들이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실질적인 정책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