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 발표 이후 청년 일자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청년 고용률이 16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진 청년들이 쉬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실제로 학업, 취업 준비, 육아·가사 등 구체적인 사유 없이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일시적인 하락을 제외하고 40만 명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 대비 20만 명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일부에서는 청년 세대의 나약함을 탓하기도 하지만, ‘쉬었음’ 청년 대다수는 단순한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이탈한 경험이 있는 노동력이다. 최저시급 이하의 급여, 비위생적인 화장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냉난방 시설, 사적 심부름 강요, 직장 내 괴롭힘 등 기본적인 노동 환경조차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일을 지속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들이 희망하는 일자리는 ‘특별한’ 일자리가 아니라 연봉 2823만 원, 통근 시간 63분 이내, 주 3.14회 이하의 추가 근무, 개인의 성장과 경력에 도움이 되는 업무 등 ‘상식적인’ 일자리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는 이러한 ‘상식적인’ 일자리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의 일자리 현황은 65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의 급증과 청년 일자리의 동반 감소로 요약된다. 8월 기준으로 청년 일자리는 1991년부터 2025년 사이에 약 200만 개가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일자리는 368만 개 이상 증가했다. 그 결과, 청년 일자리와 65세 이상 일자리의 비율은 1991년 8.3배에서 올해 0.8배까지 급감했으며, 지난해부터는 65세 이상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를 추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OECD 평균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OECD 국가들의 평균은 65세 이상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의 59%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며, 고령층 일자리가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도 청년 일자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일자리 문제는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산업 구조의 문제와 직결된다. 특히 청년 일자리 부족의 근본 원인은 신산업이 제대로 육성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제조업의 일자리 비중은 1991년 8월 약 27%에서 올해 8월 15%로 감소했다. 이는 일본이 약 50년에 걸쳐 진행한 탈공업화가 한국에서는 33년 만에 압축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 제조업이 미국이 구축한 산업 생태계 내에서 생산 부문에만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제품 설계, 디자인 등 고부가가치 사업 서비스는 미국 등 선진국에 의존하는 ‘자기완결성을 결여’한 구조이다. 이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 자리를 대표적인 저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인 자영업 증가가 채우고 있다. 1991년 92% 이상이었던 자영업자 평균 소득과 급여 생활자 평균 소득의 비율은 지난해 35% 미만으로 하락하며, 한국형 ‘소득의 초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은 결혼율과 출산율 저하, 그리고 고령화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의 고령화는 초고속으로 진행 중이다. 6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은 2015년 25%에서 지난해 37%까지 급증했다. 반면, 신산업 육성 실패는 청년 일자리의 감소로 이어졌다. 25~34세 핵심 노동력 취업자 규모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8월 606만 명을 정점으로 올해 8월에는 535만 명으로 70만 명 이상 감소했다. 30~34세 일자리조차 1991년 8월 310만 명에서 2025년 8월 294만 명으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65세 이상 취업자는 339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 산업 생태계가 심각한 ‘일자리 병’에 걸렸음을 시사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기술 혁명은 산업 체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인터넷 및 IT 혁명으로 ‘디지털 생태계’가 열렸고, 데이터 혁명, 그리고 AI 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역시 IT 강국, 신성장 동력 육성 등으로 대응해왔지만,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 실패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과 혁신 노력이 좌초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 초혁신 경제로의 대전환에 사활을 거는 이유가 있다.
AI 대전환이 ‘괜찮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난 30년간의 산업 정책에 대한 철저한 자기 비판이 요구된다. 특히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하는 것은 과거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산업화 경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 ‘식민지형 산업화’와는 달리, AI 시대를 위한 ‘자기완결형, 선진국형 디지털 생태계’ 구축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중국 등과 달리 한국은 디지털 생태계의 출발점인 플랫폼 및 데이터 경제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획일주의, 줄세우기, 극한 경쟁 속에서 ‘모노칼라 인간형’을 배출하는 현재 교육 시스템 하에서는 AI 모델을 개발하더라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 현행 교육 시스템은 과제를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과 협력하여 새로운 답을 만들어내는 인재 양성에 한계를 보인다.
한국이 미국처럼 플랫폼 사업 모델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이유도, ‘위계(명령)와 경쟁’에 익숙한 ‘모노칼라 인간형’이 ‘분산과 이익 공유와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사업 모델의 문화와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플랫폼 사업 모델을 디지털 생태계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해 진화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한국이 ‘데이터 혁명’ 및 ‘AI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이며, 삼성전자와 같은 대표 기업이 제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도체 사업마저 AI 대전환 과정에서 2류 기업으로 전락하는 원인이 되었다.
AI 기반 산업체계의 대전환에서 인재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AI 모델을 활용하여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뒤처진 플랫폼 사업 모델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가치와 일거리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인재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AI 3대 강국’은 인재의 뒷받침 없이는 달성 불가능하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 국민 맞춤형 AI 교육’을 제공하고, ‘쉬었음’ 청년들에게 AI 교육과 함께 생활비까지 지원하겠다는 ‘AI 전사 육성’ 정책을 청년 고용 부진 대책으로 제시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의 실패한 산업 정책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이나 기득권과의 ‘결별’이 필수적이다. ‘AI 전사’는 획일주의, 줄세우기, 극한 경쟁 환경에서 배출되는 모노칼라 인재를 만들어내는 현행 교육 시스템과 양립하기 어렵다. 과거 영국이 근대 산업 문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 혁명을 통한 새로운 인재 육성, 사회 지배 세력 교체, 그리고 근대 은행 시스템과 유한 책임제 도입 등 사회 혁신을 통해 19세기를 대영제국 시대로 만든 산업 혁명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혁명 없이는 성공적인 AI 대전환이 어렵다는 점은, AI 인프라와 모델 분야에서 2대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20%에 가까운 청년 실업률(8월 18.9%)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청년 일자리 문제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AI 전사들에 의한 새로운 시도들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부동산 모르핀’ 투입을 중단하고 ‘부동산 카르텔’과 결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AI 교육을 받은 전 국민이 AI 모델을 활용하여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여유를 보장하기 위해, ‘쉬었음’ 청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생계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기적인 사회 소득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사회 소득의 제도화는 초혁신 경제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시드머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