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AI 학습에 필수적인 ‘데이터’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공 부문의 데이터 관리 방식은 AI 발전의 근본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파편화되고 맥락이 단절된 데이터는 AI의 잠재된 패턴을 효과적으로 찾아내는 능력을 저해하며, 이는 결국 AI 지능 격차를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패턴을 찾아내는 기술이다. 충분한 양의 데이터가 확보되지 않으면 AI는 ‘과적합’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는 마치 주사위를 세 번 굴려 세 번 모두 6이 나왔다고 해서 ‘이 주사위는 6이 많이 나오는 주사위’라고 성급하게 결론 내리는 것과 같다. 제대로 된 주사위라면 수많은 굴림을 통해 각 면이 비슷한 확률로 나타날 것이다. 이처럼 AI 또한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학습해야만 정확하고 지능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데이터 관리 방식은 이러한 AI 발전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가 D 드라이브와 같은 개인별, 부서별 저장 공간에 파편화되어 저장되면서, 데이터는 해당 담당자의 퇴사나 컴퓨터 포맷과 함께 사라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에 담긴 수많은 맥락, 암묵지, 업무 과정 등이 함께 소실된다. 이는 곧 미래에 공무원들이 사용하게 될 AI의 성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결국 한국의 AI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실리콘밸리의 협업 및 보고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밀집한 실리콘밸리에서는 ‘6 페이저(6 Pager)’라는 독특한 보고 형식을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은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6페이지 분량의 메모를 작성하고 공유하며, 회의 참가자 전원이 첫 30분 동안 이 메모를 숙독하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이 메모는 도입부, 목표, 원칙, 사업 현황, 교훈, 전략적 우선순위, 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회의의 목적과 핵심 내용을 명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6 페이저’는 완전한 문장으로 서술체로 작성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파워포인트(PPT)의 불릿 포인트(글머리 기호)가 엉성한 사고를 쉽게 숨길 수 있다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 서술 구조를 가진 완전한 문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사고와 핵심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강제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음슴체’와 유사한 간결한 개조식 보고 방식은 이러한 심층적인 사고 과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실리콘밸리에서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협업 시스템과 위키 엔진 기반의 공개 게시판을 적극 활용한다. 재무 및 인사 부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서에서 게시판을 공개로 운영하며, 이를 통해 모든 구성원이 업무의 맥락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개인이 만든 자료뿐만 아니라 검토에 사용된 참고 자료까지 조직 내에 체계적으로 축적되도록 하여, AI가 학습하고 활용할 수 있는 풍부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즉, 문장(text)이 아닌 맥락(context)을 공유하는 문화가 AI 지능 격차 해소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공공 부문에서 AI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관리 방식의 혁신이 시급하다. 개인별 파편화된 저장 방식에서 벗어나 클라우드 기반의 체계적인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6 페이저’와 같이 서술체 기반의 심층적인 보고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보고서 작성 방식을 바꾸는 것을 넘어, 공무원들의 사고방식과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나아가 한국 AI 기술 경쟁력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훨씬 더 뛰어난 인공지능을 활용할 자격이 있다.
박태웅 녹서포욤 의장은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IT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으며,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