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후위기 심화와 국제 통상 환경 변화 속에서 기업 제품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탄소감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과거 느슨한 국제 규범 아래 개별 국가의 자율에 맡겨졌던 기후변화 대응은 이제 국제 통상 정책과 연계되어 기업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2024년부터 더욱 가시화될 전망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기후대응과 통상정책을 연계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은 수출 제품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감축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처럼, 자동차 부품 생산 및 완성차 조립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이 적을수록 보조금 혜택이 커지는 사례는 이미 이러한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한국 기업의 탈탄소화 속도가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전기차, 철강을 넘어 다양한 제품 및 소재로 확대될 것이 자명하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기후-통상 연계라는 새로운 통상 기준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수단은 바로 기후기술 확보에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초불확실성 속에서도 에너지 전환 투자 전략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기술 가격 하락과 확산의 선순환, 특정 산업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증가,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려는 강한 의지라는 세 가지 동인에 의해 뒷받침된다. 실제로 2022년 설문조사에서 글로벌 투자회사 및 에너지기업 고위 경영자들은 향후 18개월 내 가장 투자할 분야로 탈탄소/저탄소 기술을 꼽았으며, 2023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0%가 에너지 전환 전략에 더욱 집중하거나 기존 전략을 유지하겠다고 밝혀, 불확실성 속에서도 에너지 전환 투자를 늘릴 것임을 시사했다. 또한, 2023년 전 세계 신규 발전소 설치 용량의 5분의 4가 재생에너지였으며, 특히 태양광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며 기술 확산의 중심에 섰다.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나 EU의 NZIA(탄소중립산업법)와 같은 정부 지원 정책은 탄소중립에 대한 경제성을 높여 관련 투자를 활성화하고 있으며, 세계 최초로 메탄올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발주되는 등 새로운 친환경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대응하는 데 있어 독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한국은 전력망이 다른 국가와 연결되지 않아 고립되어 있고, 전력 시장 개방이 더뎌 유연성이 부족하며, 자연 자원 또한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글로벌 기술 가격 하락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기 어렵다. 또한, 국내 기업들은 수출 지장을 최소화하려는 방어적 대응에 치중하여 탄소중립 투자 활성화로의 연계에는 다소 둔감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first mover’보다는 ‘fast follower’에 익숙한 기업 문화는 시장 선점을 위한 과감한 투자 결정에 어려움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단기적인 감축 규제나 기술 지원에 대한 정책적 시그널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기후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데이터 기반의 투자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특허 빅데이터의 활용이 절실하다. 전체 기술 정보의 80%에 해당하는 설명력을 가진 특허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논문이나 전문가 인터뷰 결과로 보완한다면 유망 기술 분야 선정, 핵심 기술 파악, 접목 기술 탐색, 기술 벤치마킹, M&A 타겟팅, 기술 가치 평가 등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필요한 기술 중 35%는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거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이는 재생에너지, 전기화, 에너지 효율, 수소, 탄소 제거 등의 분야에서 여전히 시장 선점 기회가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2023년 12월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의 결과는 한국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COP28 결정문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대, 에너지 효율 2배 개선,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합의를 담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2024년까지 2030년 국가 감축 목표 달성 경과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고, 2025년까지는 2035년 국가 감축 목표를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2024년 안에 향후 15년간의 에너지 전환 청사진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고,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적용될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 및 할당계획을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 법정 계획들은 COP28 결정문 및 유엔 제출 국가 감축 목표와의 정합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국제사회의 합의는 한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촉발하고, 이는 결국 기업에 대한 기후변화 대응 요구를 증대시킬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기후-통상 연계, 기후 기술 경쟁 가속화, 그리고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한 기후 기술 확보 방안 마련과 더불어, COP28 결과에 따른 국내외 후속 조치들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전략을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나아가 국내외 정책 및 전략 형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모호한 정책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민간 실무 현황을 정부와 입법 담당자들에게 정확히 전달하며, 고객사 및 공급망 파트너들과 전략적으로 협력하는 노력을 통해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