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성장기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 가난과 허기를 이겨내며 탄생한 음식들이 이제는 일상이자 가벼운 별식이 되었다. 과거 쓰레기 처리장이었던 공간이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어려움 속에서 피어난 지혜로운 결과물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오래 견디고 볼 일’이라는 격언을 무색게 하지 않는다.
이윤희 방송작가는 과거 도시의 짙은 인상과 그 도시를 지탱했던 산업적 기반을 회고하며, 부천이라는 도시가 겪어온 변화를 조명한다. 40년 전 마산은 아버지의 이주처이자, 활기찬 어시장과 한일합섬이라는 거대한 섬유 제국으로 떠받쳐지던 경제 중심지였다. 당시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에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던 사촌 언니의 모습은 ‘산업체’ 역군들의 헌신과 ‘잘 살아보겠다’는 꿈을 안고 상경했던 수많은 공돌이, 공순이들의 열악하지만 희망찼던 현실을 보여준다. 수도권의 배후 도시였던 부천 역시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2000여 개의 공장이 들어서며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기록했고, ‘내 집 한 칸 마련’이라는 서민들의 절박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땅이었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이러한 부천 원미동의 치열했던 삶과 인간애를 그려내며 전국민의 고향처럼 다가왔다.
이러한 부천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예상치 못한 반전의 역사를 지닌 ‘부천아트벙커B39’가 자리하고 있다. 1992년 부천 중동 신도시 건설과 함께 삼정동에 설치된 쓰레기 소각장은 하루 200톤에 달하는 쓰레기를 처리하며 가동되었지만, 1997년 허가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고농도 다이옥신이 검출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주민들과 환경 운동가들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2010년 대장동 소각장으로 기능이 이전되면서 삼정동 소각장은 폐쇄되었고, 곧 철거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2018년 이곳은 33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복합문화예술공간 ‘부천아트벙커B39’로 재탄생했다. 웅장한 굴뚝과 쓰레기 소각로였던 공간은 ‘에어갤러리’로 변모하여 하늘과 채광을 끌어들이는 전시 공간이 되었으며, 쓰레기 저장조였던 벙커는 ‘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되는 핵심 공간으로 재해석되었다. 쓰레기 반입실은 멀티미디어홀(MMH)로, 펌프실, 배기가스처리장, 중앙청소실 등 기존 설비 공간들은 아카이빙실로 리모델링되어, 과거 소각장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RE:boot 아트벙커B39 아카이브展’이 상설 전시 중이다.
부천의 또 다른 반전은 ‘조마루사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과거 ‘멀뫼’ 또는 ‘조종리’로 불리던 이곳은 이제 ‘청기와뼈다귀해장국’과 ‘조마루뼈다귀해장국’ 본점이 마주 보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서민들이 애정하는 감자탕은 미군 부대에서 나온 돼지 뼈다귀에서 유래했으며, 정확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감자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1988년 부천 원미동에서 창업한 한 가게의 뼈다귀해장국은 맑고 깨끗하며 산뜻한 국물 맛으로, 깍두기, 양파, 청양고추 등 밑반찬과의 조화가 일품이다. 수입산 돼지 뼈다귀의 풍성함과 함께, 가난과 허기를 이겨낸 지혜가 담긴 이 음식은 이제 일상적인 별식이자 K-푸드의 매력으로 외국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
과거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삶을 개척해온 사람들의 지혜와, 버려진 공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노력은 부천이라는 도시에서 두 가지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냈다. 쓰레기 소각장이 예술 공간으로, 그리고 가난을 이겨낸 음식이 일상적인 별식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빛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