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화도에서 방직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여성들의 고된 삶을 떠올리면 쉰밥과 찬밥에 곁들였을 새우젓의 짠맛이 깊은 울림을 준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소창으로 기저귀를 삶아 키우던 기억, 그리고 함민복 시인의 시 구절처럼 우리네 인생의 애잔함과 맞닿아 있는 이 짠맛의 근원은 무엇일까. 강화지역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히 관광지가 아닌, 삶의 고단함과 지혜가 녹아든 진한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서울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닿는 강화도는 흔히 역사의 섬, 호국의 섬으로 불린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는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대몽항쟁, 서구 열강의 침략을 막아낸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서려 있다. 하지만 강화는 이 모든 역사적 아픔을 뒤로하고 계절마다 입맛을 돋우는 식도락의 땅이기도 하다. 봄의 숭어회, 여름의 병어회, 가을의 대하와 갯벌장어 등 풍성한 해산물은 물론, 특산물인 순무와 고구마 또한 강화의 미식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이러한 강화에서 ‘강화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가 로컬100에 선정된 사실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국내 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방직공장을 카페로 탈바꿈시킨 명소를 이미 경험했기에, 강화직물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과연 어떤 감동을 선사할지 기대를 모았다. 1933년 강화 최초의 인견 공장인 ‘조양방직’ 설립 이후 1970년대까지 강화에는 60여 개의 방직공장이 성행했으며, 현재까지도 6개의 소창 공장이 옛 방식 그대로 소창을 직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폐 소창 공장이었던 ‘동광직물’을 생활문화센터로, 1938년에 건축된 한옥과 염색 공장이었던 ‘평화직물’ 터를 ‘소창체험관’으로 새롭게 단장한 이곳들은 강화 직물 역사의 맥을 잇고 있다. 옷, 행주, 기저귀 등으로 널리 쓰였던 소창은 목화솜에서 뽑은 실로 짠 천으로, 일제강점기부터 면화는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 등에서 수입되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 강화는 수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직물 도시로 꼽혔으며, 강화읍 권에만 60여 개 공장이 운영되고 4000명에 달하는 직공들이 근무할 정도로 활발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당시에는 12시간 주야간 교대 근무 속에서도 먼지 날리는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어린 사람들에게는 꿈이었을 정도로 방직 산업은 중요한 일자리였다.
강화의 직물 산업 발전에는 서울의 배후 도시라는 지리적 이점과 더불어, 예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화문석 제작 기술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꽃무늬 자리인 화문석, 특히 강화 왕골로 짠 자리나 돗자리는 기품 있는 문양과 뛰어난 품질로 왕실이나 벼슬아치에게 선물되거나 외국으로 수출될 정도로 귀하게 여겨졌다. 최고 수준의 화문석을 짜던 강화 사람들의 섬세한 손길이 방직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방직 과정은 수작업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수입된 원사를 풀어 누런 목화실을 옥수수 전분으로 풀을 먹여 표백하고 건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봄, 여름에는 사흘, 겨울에는 일주일가량 자연건조를 통해 뽀얗고 부드러운 실을 만들어낸 뒤, 씨실과 날실을 교차시켜 베틀에서 평직물로 짜내는 이 모든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직의 흔적은 남녘 마산에서 자란 필자에게도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으며, 소창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되뇌게 했다.
어머니가 삼남매의 기저귀를 소창으로 만들어 늘 부뚜막에서 삶았던 기억, 혹은 지금도 소창 행주를 삶아 쓰는 어머니의 모습은 소창이 우리네 삶과 얼마나 밀접했는지를 보여준다. 발진, 땀띠, 아토피에도 효과가 있는 소창은 현대에도 꾸준한 수요가 있다.
이러한 소창이 완성되면 강화 여성들은 직접 방직물을 둘러메고 삼삼오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방판’에 나섰다. 중간 상인 없이 직접 판매했기에 마진이 좋았고, 가까운 북한 개풍 지역까지도 방문했다고 한다. 억척스럽고 뻔뻔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앞치마와 함께 강화 새우젓을 싸 가지고 다니며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그들의 삶은 고단함 그 자체였다. 배고프면 아무 부엌에 들어가 밥 한 덩이를 얻어 신세 지며, 찬으로는 오직 강화 새우젓 하나에 의지해야 했던 당시의 풍경은 짠맛의 의미를 깊게 새기게 한다.
전국 물량의 70~80%를 담당하는 강화 새우젓은 서해안 전 지역에서 잡히는 젓새우 중에서도 강화만의 넓은 갯벌 환경과 한강, 임진강이 만나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월등한 맛을 자랑한다. 짠맛보다는 들큼하면서도 담백한 맛으로, 늦가을 김장철이면 강화 새우젓을 사려는 인파로 섬이 들썩일 정도다.
이 강화 새우젓에서 탄생한 소박한 향토음식이 바로 ‘젓국갈비’다. 이름에는 갈비가 들어가지만, 이 음식의 진정한 주인공은 갈비, 호박, 두부, 배추 등 그 어떤 재료보다 새우젓이다. 돼지고기의 기름기가 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슴슴하면서도 배추에서 우러난 단맛, 그리고 젓새우가 선사하는 감칠맛의 조화는 도드라지는 재료 하나 없이도 오묘한 맛을 만들어낸다. 육수에 채소를 데치는 샤부샤부 이전에, 강화 사람들은 이 젓국 하나로 멋진 작품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호박, 두부 등 어느 재료 하나 튀지 않고 맛이 둥글둥글하며,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하고 부드러워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강화 창후리는 교동 앞바다와 함께 최고의 새우잡이 터로 꼽히며, 이곳에서 젓국갈비 가게들이 성행하고 있다. 인공 감미료로 흉내 낼 수 없는 새우젓의 미미한 감칠맛이 뛰어난 집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대미필담(大味必淡)’이라, 정말 맛있는 음식은 담백하다는 말처럼, 애호박과 배춧잎의 단맛, 구수한 맛을 끌어올리는 미미한 새우젓이야말로 젓국갈비 맛의 한 끗을 좌우한다.
오늘 소창의 역사와 강화 여성들의 삶, 그리고 강화 새우젓의 비밀을 알게 되니, 그 짠맛이 더욱 깊고 애잔하게 다가온다. 방직팔이에 나섰던 억척스러운 강화 여인들의 고단한 삶과 그들이 쉰밥, 찬밥에 요긴하게 곁들였을 새우젓을 생각하면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온다. 또한, 어린 시절 소창 기저귀를 삶아 키우신 어머니, 그리고 함민복 시인의 시 구절처럼 우리네 인생의 애잔함과 짠맛의 근원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로컬100 칼럼 작성을 위해 방문한 강화소창체험관과 동광직물 생활문화센터 직원들과 문화해설사들의 친절함에 감사하며, 세상에는 감사할 일이 도처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