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농식품 기업이 유엔(UN) 식품 조달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는 단순한 식량 원조를 넘어 국내 기업의 수출 판로를 개척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적개발원조(ODA) 모델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지난 9월 4일, ㈜젤텍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으로부터 영양강화립(Fortified Rice Kernel, FRK) 201톤을 공급하는 업체로 공식 선정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식량 원조 분야에서 ‘원조’와 ‘수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번 진출의 배경에는 한국 농식품 산업이 가진 취약 계층의 영양 개선에 대한 높은 관심과 기술력이 자리 잡고 있다. 영양강화립은 쌀가루에 비타민과 무기질 프리믹스를 첨가하여 반죽, 압출, 성형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가공 쌀 알갱이다. 이 제품은 일반 쌀 100알에 영양강화립 1알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섭취할 경우, 철분, 아연, 엽산, 비타민 A, B1, B12 등 필수 미량 영양소를 효과적으로 보충할 수 있다. 쌀 고유의 맛과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영양가를 높이는 기술은 빈곤 지역이나 난민 캠프에서 만연한 영양실조를 예방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특히 아동과 임산부 등 취약 계층의 영양 불균형 해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러한 영양강화립을 UN 식품 조달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시키기 위해 정부는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2024년 11월 글로벌 공공조달수출상담회(GPPM)에 WFP 조달 담당관을 초청한 것을 계기로, 조달청,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재정부 원스톱수출수주지원단,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이 참여하는 ‘UN 조달시장 진출 협의체’가 구성되었다. 이 협의체는 영양강화립을 전략 품목으로 선정하고, 방글라데시의 원조 쌀 20,064톤과 함께 공급될 영양강화립 201톤을 국내 기업이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세계식량계획의 식품 기술 전문가를 초청하여 생산 현장에서의 기술 지도도 이루어졌으며, UN 식품 공급자 등록에 필수적인 ‘세계영양개선연합(GAIN) 인증’을 국내 기업 최초로 취득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주)젤텍은 대한민국 최초로 UN 식품 조달 시장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번에 ㈜젤텍이 WFP로부터 낙찰받은 영양강화립 201톤은 오는 10월 방글라데시로 출항하는 20,064톤의 원조 쌀과 혼합되어 현지 난민 및 취약 계층의 영양 결핍 문제 해결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예정이다. 이는 한국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일 뿐만 아니라, 식량 원조 사업이 국내 산업의 성장과 연계되는 더욱 내실 있는 사업 모델로 발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조달청 기획조정관 이형식은 “이번 성과는 범정부적 협력과 기업의 도전 의지가 결합되어 높은 진입 장벽을 가진 UN 식품 조달 시장을 처음으로 넘어선 사례”라고 평가하며, “앞으로도 기술 개발부터 조달 절차 지원까지 국제기구 조달 시장에 우리 기업이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현장 밀착형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 국제협력국장 정경석 역시 “이번 성과는 국제사회와 함께 기아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동시에, 우리 농식품 산업의 경쟁력을 국제 무대에 입증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며, “향후 영양강화립을 넘어 영양강화 비스킷, 슈퍼시리얼 등 다양한 품목으로 UN 조달 시장 진출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