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에도 수많은 제품이 소비되고 버려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환경 부담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제품으로 인한 환경영향의 80%는 소비 이전에 이미 설계 단계에서 결정된다는 유럽연합 집행위의 분석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품의 생산 과정, 즉 설계 단계에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환경부는 제품 설계 단계부터 탄소중립과 자원순환을 고려하는 ‘한국형 에코디자인 제도’ 도입을 본격화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지난 9월 25일 코엑스에서 ‘제1차 에코디자인 정책포럼’을 개최하고,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했다. 이미 유럽연합(EU)은 2024년 7월부터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을 발효하여 섬유, 타이어, 가구, 가전제품 등 광범위한 품목에 재활용성, 수리 용이성, 탄소 배출량 등 포괄적인 환경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요건 미달 시 유럽 시장 진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환경부는 그동안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포장재 재질·구조 지침 및 등급 평가, 제품의 순환이용성 평가제도, 포장재 및 일회용품 원천 감량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순환 경제 사회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제품 설계 단계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새 정부는 자원순환 및 탄소중립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글로벌 교역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국형 에코디자인 제도의 도입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한국형 에코디자인 제도가 시행되면, 품목별 기준에 따라 재활용이 어려운 재질이나 복잡한 구조를 개선하여 수리 및 재활용 저해 요인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제품별 일정 비율 이상의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 탄소 배출량 및 에너지 효율 등 환경 정보의 전자적 방식 제공(DPP) 등을 통해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전반적으로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환경 발자국(CO₂ 배출량, 물 사용량 등 상한 설정), 수리 용이성(특수 나사 제한, 모듈형 설계), 재활용 용이성(혼합 재질 제한), 유해 물질 제한 등 구체적인 설계 요건이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에코디자인 제도의 성공적인 적용은 소비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들은 환경 보호에 기여하는 제품을 사용함은 물론, 내구성과 수리 용이성이 높아진 제품을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물 사용료나 에너지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더불어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제조업계는 유럽연합(EU)의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수출 시장에서의 녹색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주한유럽연합대표부가 유럽연합의 에코디자인 규정 실행 전략을 소개했으며, 삼성전자, 엘지전자 등 산업계는 탄소중립·자원순환을 위한 비전과 에코디자인 확대 전략을 공유했다. 학계 및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형 에코디자인 제도’ 도입 시 고려해야 할 사항과 산업계의 대응 방향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진행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의 환경영향을 최소화하려면 결국 제품 설계부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효율적이고 효능감 있는 에코디자인 제도화를 추진하여 우리 제품들이 탈탄소 녹색문명으로의 전환을 가능케 하는 촉매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