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동력인 고품질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고 가명정보 제도를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간 가명정보 처리 및 제공 과정에서 공공기관 및 담당 공무원이 겪어온 법적 부담과 복잡하고 긴 절차는 데이터 활용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이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가명정보 제도·운영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데이터 활용 생태계를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부가 제시한 이번 대책의 가장 큰 배경에는 가명정보 처리 업무의 전문성 부족과 재식별에 따른 법적 책임에 대한 우려로 인해 공공기관이 가명정보 제공에 소극적이었던 현실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내년부터 ‘가명처리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를 통해 공공기관은 자체적으로 전문 인력을 확보하지 않고도 전문 기관에 가명 처리를 위탁할 수 있게 되어 실무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또한, 개인정보위가 지정한 전문기관에서 가명 처리의 적정성을 확인해 줌으로써 데이터 제공 기관의 법적·행정적 부담을 대폭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무원의 법적 책임을 덜어주기 위해 공공데이터법상 성실한 직무 이행에 대한 면책 조항을 구체화하고, ‘공무원 면책 가이드라인’에 가명처리 관련 면책 사항을 포함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법 적용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행정 조치 대상 여부를 회신받고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받을 수 있는 ‘가명정보 비조치 의견서’ 제도를 연내 도입하여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계획이다. 더불어, 행정안전부는 올해부터 685개 행정·공공기관 평가에 가명정보 제공 실적을 가점 항목으로 반영하여 기관들의 가명정보 제공 유인을 강화한다. 기관이 가명처리 수수료 수입으로 비용을 직접 보전할 수 있도록 오는 12월까지 가명정보 처리 수수료 가이드라인도 제시할 예정이다.
가명정보 활용의 또 다른 어려움으로 지목되어 온 과도한 처리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되었다. 현장의 제도가 경직적이고 보수적으로 운영되어 왔던 점을 개선하기 위해, 개인정보위는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을 연내 개정하여 가명처리 절차를 차등화하고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데이터 위험도’와 ‘처리 환경의 취약도’를 기준으로 리스크 등급이 낮은 경우 서면 심의나 담당자 적정성 검토로 심의를 대체할 수 있는 간소화된 절차를 마련하여 안내할 계획이다. 이미지, 영상 등 비정형 데이터의 경우, 대규모 가명처리 후 전수조사 대신 표본조사를 통해 가명처리 수준의 적정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가명처리 과정에서 필요한 서류 역시 연계성 및 필요성을 고려하여 대폭 통폐합하여 기존 최대 24종에서 최소 13종으로 줄일 예정이다. 공공기관 내 가명정보 제공 절차 또한 효율화된다. 오는 11월까지 ‘공공기관 가명정보 제공·관리 체계에 관한 규정’을 총리훈령으로 제정하여 연구자가 여러 부서를 거치지 않고 총괄 부서에 한 번만 신청하면 안내받을 수 있도록 내부 운영체계를 제도화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데이터 제공 협의부터 데이터 결합, 기관 외 반출까지 평균 310일이 소요되던 기간을 2027년까지 100일 이내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기관 간 가명처리 기준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데이터 손실을 최소화하며 활용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된다. 가명처리 적정성 심의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법제화하여 연내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전문기관 및 공용 적정성 심의위원회 운영 근거도 마련된다. 무엇보다 데이터 처리 환경의 안전성을 보증하는 ‘개인정보 이노베이션존’ 운영을 확대·강화하며, 내년부터는 이노베이션존 간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연계하여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더욱 다양한 정보를 자유롭게 결합·분석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은 AI 시대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고품질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가명정보 활용에 따르는 부담은 줄이고 절차는 합리화하여 현장에서 데이터가 더욱 쉽고 원활하게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