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5년은 프랑스 음악사에 있어 격동의 시기였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해였다. 한쪽에서는 조르주 비제(1838–1875)가 불멸의 오페라 <카르멘>을 남기며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마감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20세기 인상주의 음악을 이끌어갈 모리스 라벨(1875–1937)이 태어나며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이처럼 한 해에 희비가 엇갈리는 두 거장의 존재는 마치 ‘종막과 서막’처럼 한 시대를 잇는 극적인 상징이 되었으며, 프랑스 음악의 흐름을 과거와 미래로 나누는 중요한 분기점을 제시한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되짚기 위해 (사)한국페스티발앙상블이 창단 80주년 기념 정기연주회 ‘그 해, 비제와 라벨이 있었다 – 비제 서거, 라벨 탄생 150주년’을 오는 11월 4일(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개최한다.
이번 공연은 (사)한국페스티발앙상블 박은희 대표의 소개처럼, 두 작곡자의 의미 깊은 인연을 그들의 주요 작품을 통해 시대적 흐름의 변천과 특징을 살피는 기회로 마련되었다. 공연은 라벨의 ‘서주와 알레그로(Introduction and Allegro, 1905)’로 시작하며, 기악적 색채 실험과 치밀한 구성을 통해 프랑스 실내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그의 면모를 보여줄 예정이다. 이 곡에서는 하프 박라나, 플룻 이주희, 클라리넷 김주현, 바이올린 정준수, 김진승, 비올라 윤염광, 첼로 허철이 함께 참여하여 화려한 하프 기교와 다채로운 음색을 선보인다.
이어지는 비제의 ‘아를의 여인 모음곡 2번 중 미뉴엣(Menuet from L’Arlésienne Suite No.2, 1872)’은 알퐁스 도데의 희곡을 위해 작곡된 극음악으로, 민속 선율과 드라마틱한 긴장감, 목가적인 서정성이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이 곡은 플룻 이주희와 하프 박라나가 연주한다.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할 곡은 라벨의 ‘마다가스카르의 노래(Chansons Madécasses, 1925–1926)’다. 에바리스트 드 파르니의 시에 곡을 붙인 이 작품은 열정적인 사랑, 백인 식민세력에 대한 저항, 휴식과 평온의 순간을 독특한 어법으로 담아내며, 텍스트의 사회적 맥락과 음향 실험이 교차하는 라벨 후기 성악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메조소프라노 김지선, 플룻 이주희, 첼로 허철, 피아노 신상진이 4중주로 이 곡을 연주하며 깊이를 더할 예정이다.
1부 휴식 후 2부에서는 비제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카르멘 판타지 (Carmen Fantasy for Two Pianos, arr. Greg Anderson)’가 펼쳐진다. 미국 피아니스트 겸 편곡자 그레그 앤더슨이 편곡한 이 판타지는 피아니스트 신상진과 임재한이 극적으로 질주하고 교차하며 강렬한 오페라 무대를 재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 곡으로는 라벨의 ‘현악 4중주 F장조(String Quartet in F major, 1903)’가 연주된다. 청년 시절 완성한 그의 유일한 현악 사중주는 프랑스 실내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바이올린 정준수, 김진승, 비올라 윤염광, 첼로 허철이 이 곡을 통해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며, 19세기 낭만주의와 20세기 인상주의가 만나는 경계선에서 청중에게 잊지 못할 음악적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1986년 창단되어 한국의 대표적인 실내악 전문 연주 단체로 자리매김한 (사)한국페스티발앙상블은 이번 공연을 통해 프랑스 음악사의 두 거장, 비제의 불꽃 같은 낭만성과 선율미, 그리고 라벨의 섬세한 색채와 현대적 감수성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